"쿠키라도 좀 드시겠어요?" 일본 이바라키현 미토시 한 호텔의 1층 로비.50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기자에게 다짜고짜 과자를 건넸다. 아침 식사거리를 찾아 동분서주하는 기자의 모습이 불쌍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이틀간 거의 굶고 있던 터라 두말 않고 덥석 받았다. 편의점 선반은 텅 비었고,호텔을 비롯해 음식점은 모두 닫혀 먹을거리를 구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중년 남성에게도 쿠키 한 조각이 귀한 때였을 텐데 그는 선뜻 쿠키를 나눠주었다.

센다이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는 초콜릿을,도쿄행 전철 안에서는 오니기리(주먹밥)와 생수를 얻어 먹었다. 쑥대밭이 된 히타치 항구에서 회계장부라도 찾을 요량으로 쓰레기더미를 뒤지던 낚시도구 가게 주인은 낯선 이방인에게 도움을 주지 못해 안타깝다는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헤어질 때면 모두들 "조심하세요"라는 당부말을 잊지 않았다. 전후 최악의 참사를 맞아 위로를 받아도 시원찮을 일본사람들이 되레 남 걱정을 하다니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1주일간의 지진현장 취재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 TV를 통해 지켜본 일본인들의 침착함과 질서정연함이 화제였다. 이를 놓고 "일본인들 속에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DNA가 있다"거나 "남에게 불편을 끼쳐서는 안된다는 메이와쿠(迷惑)문화 때문이다"는 등 그럴싸한 해석들이 나온다.

보다 실증적인 분석도 있다. 김종원 동의대 한의학과 교수는 사람의 체질을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조선 후기 한의학자 이제마의 사상의학(四象醫學)에서 그 답을 찾았다. 김 교수가 올초 게이오 대학병원에서 환자 367명을 임상실험한 결과 소음인(少陰人)이 43%로 가장 많게 나왔다. "소음인은 음(陰)체질이어서 조직에 순응적이고,속으로는 걱정을 많이 해도 겉으로 표현을 자제하니까 차분해보인다"는 설명이다. 한국인은 소양인(少陽人) 체질이 많다고 한다.

불편함을 속에 담아놓지 않는 한국인들에게 "쇼가나이(할 수 없다)"라며 체념하는 일본인들은 어쩌면 바보스럽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휴대폰으로 집안얘기까지 시끄럽게 늘어놓는 서울의 지하철 안에서 여러 생각들이 오갔다.

김병일 사회부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