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 · 3 개각'을 앞두고 정운찬 현 동반성장위원장의 총리 기용을 놓고 이명박 대통령 참모진 간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 개각 발표 이틀 전까지 이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지 못할 정도였다. 내부적으로 추진했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정 위원장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갈등을 빚게 한 표면적 이유였지만 근본적인 갈등의 불씨는 정 위원장이 총리가 되면 차기 대선주자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정 위원장은 이렇게 총리 기용 때부터 여권 내 '파워게임'의 진앙지가 됐다. 친이명박계 내부에서 정 위원장을 미는 측과 견제하는 측 간의 권력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실세들의 거취와 연결되면서 복잡한 정치방정식이 돼 버린 것이다.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정 위원장은 친박근혜 측과 대립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약속과 신뢰를 거론하며 '원안+알파(α)'입장을 공개 천명하자 당시 정 총리는 "정치적 신뢰 문제 이전에 막중한 국가 대사"라고 반박하며 두 사람은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면엔 역시 차기 경쟁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패배 직후엔 이른바 '정운찬 거사설'이 불거졌다. 당초부터 정 위원장을 총리로 강력하게 추천했던 이 대통령 핵심 측근이 정 총리가 대통령 주례보고 때 독대를 통해 청와대 인사 개편 등 국정쇄신안을 건의할 것이라고 말한 게 단초가 됐다. 청와대 정무 민정 홍보 국정기획 수석 등을 겨냥했다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당시 한나라당 소장파들의 국정쇄신 요구와 맞물리면서 정국에 상당한 파장을 낳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독대와 쇄신안 건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인적 개편의 대상인 청와대 수석들이 의도적으로 대통령을 빼돌렸다'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정 위원장을 견제했다는 것이다.

이번엔 정 위원장의 '4 · 27 경기도 분당을 보궐선거'출마 문제를 두고 여권이 갈라졌다. 이재오 특임장관을 비롯한 친이 주류 측이 정 위원장을 밀고 있고,임태희 대통령 실장은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관은 2006년 7월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서 강 전 대표에게 석패를 하고 칩거를 한 경험이 있다. 친이 주류 측이 보궐선거에서 정 위원장을 내세우려 하는 것은 강 대표를 견제하려는 포석과 함께 내년 총선 대선을 앞둔 당 체제 개편 구상과 무관치 않다. 차기 당 지도체제 개편 때 정 전 총리를 친이계 당 대표로 내세우고 내년 4월 총선의 간판으로 활용하자는 계산이 엿보인다.

강 전 대표는 대표 취임 후 임 실장을 여의도연구소장으로 발탁한 적이 있을 만큼 두 사람은 가깝다. 역시 여권 내 복잡한 권력투쟁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은 "여권에서 힘겨루기를 한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지만 공천 마감시한이 지난 상황에서도 정 위원장의 출마 문제를 놓고 힘겨루기는 계속되고 있다. 실제 정 위원장은 불출마를 거듭 시사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출마에 강한 의지를 피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