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기억되는 1등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2등의 차이는 크지 않다. 올림픽을 비롯한 세계 대회의 금 · 은메달리스트를 결정짓는 건 실로 찰나다. 대학 입학시험과 취업시험의 당락 모두 극히 작은 점수에 좌우된다. 억울하다 싶어도 결과가 나오면 그것으로 끝이다.

헌법재판소의 합헌과 위헌 결정 역시 한 표에 달렸다. 5명이 위헌에 찬성하고 4명이 합헌이라고 해도 합헌이다. 위헌이 되려면 재판관 9명 중 3분의 2인 6명 이상이 동의해야 하는 까닭이다. 소수의견을 낼 순 있어도 결론을 바꿀 순 없다.

MBC TV '우리들의 일밤-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 20일 방송분에서 탈락자 김건모에게 준 재도전 기회가 논란을 부른 이유다. '슈퍼스타 K2'(Mnet) 성공 이후 만들어진 이 프로그램은 가수 7명이 각각의 기량을 발휘한 뒤 청중평가단 500명의 평가에 따라 1명을 탈락시키는 서바이벌 쇼로 시작됐다.

첫주엔 자기 노래를 불러 순위를 매기되 탈락시키지 않고,둘째주엔 1980년대 히트곡(무작위)을 편곡해 부르라는 미션을 준 다음,3주째 본공연에서 청중평가단의 심사를 받는 형식이었다. 여기서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선보인 김건모가 꼴찌를 해 탈락자가 된 것이다.

출연 가수 중 왕선배 격인 그가 떨어지게 되자 다들 당황한 건 당연지사.그러나 원칙은 원칙인 것을 제작진은 긴급회의를 열어 본인이 원한다면 재도전 기회를 주겠다고 밝혔다. 누가 탈락하느냐에 주목했던 시청자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쏟아냈고,작가 김수현씨 또한 트위터에 '평가단을 있으나마나 하게 만들고,선택권을 가수에 넘긴 방송사의 얍삽함에 입맛이 썼다'고 밝혔다.

김건모는 20년 동안 '잘못된 만남' '핑계'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낸 톱가수다. 탈락한다고 그의 실력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그저 미션곡인 '립스틱 짙게 바르고'와 궁합이 안맞았다는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그가 운 없음을 인정하고 선선히 물러났으면 보기 좋고 다음 탈락자의 부담도 덜어줬을 게 틀림없다.

설사 그가 재도전 기회를 얻고자 했어도 프로그램 취지와 공정성을 생각했다면 탈락시켰어야 맞다. MBC와 제작진의 변칙은 안그래도 툭하면 무너지는 원칙,힘있는 자에게만 적용되는 예외 때문에 피 멍든 사람들의 가슴을 다시 한번 내리쳤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