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누드나 패션 사진은 인물화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요. 모든 여성의 아름다움 이면에는 독특한 인간미가 있거든요. 육체 뒤에 숨겨진 신비로운 힘을 잡아내는 게 제 역할입니다. 2005년에 만난 한국 여배우 김희선과 송혜교의 내적인 아름다움도 잊을 수 없습니다. "

그의 카메라를 거치지 않으면 톱스타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패션 사진작가 파올로 로베르시(64)는 "여성의 내면에는 몽환적인 마법 같은 게 숨어 있다"고 말했다.

22일 서울 청담동 제일모직의 편집매장 '10꼬르소꼬모' 개관 3주년 기념 작품전을 위해 방한한 그는 "그동안 고집해온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많은 여성 모델과 할리우드 스타를 찍은 것은 결국 사람들의 아름다운 관계를 표현하려 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970년 AP통신사에 입사한 그는 1971년 미국 '엘르'의 아트 디렉터를 만나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긴 뒤 세계적인 스타들과 작업해왔다. 그는 '보그''하퍼스''인터뷰' 등 패션 잡지에서 활약하며 아르마니,세루티,콤 데 가르송 등의 광고로 사진의 영역을 확장했다.

모델뿐만 아니라 유명 배우나 가수들도 그의 카메라를 거쳤다. 그는 이자벨 아자니,카트린 드뇌브,마돈나,모니카 벨루치,니컬 키드먼 등 톱스타들과의 작업을 통해 독특하고 세련된 화보를 선보이며 세계 패션 화보계의 거장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디자이너들과 '보그''W' 같은 패션잡지들이 그를 섭외하기 위해 전용 제트기를 보낼 정도였다. 이처럼 20세기 후반 패션 · 광고 사진 대가로 손꼽히며 시각 예술계 전반의 변화를 주도한 그는 근거리 장시간 노출 기법으로 촬영한 인물 사진을 통해 '현실과 꿈의 경계'를 회화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0년부터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그는 자연이나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도전과 모험 정신에 초점을 맞췄다. "사진 예술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을 극대화시켜줍니다. 사진을 통해 미래의 불확실성을 투영해낼 수 있지요. "

사진을 통해 새로운 현실을 찾아낼 수 있고,세상을 재해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젊은 시절 가족들과 스페인을 여행하며 사진에 빠졌다는 그는 "조상들의 얼굴이나 달의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듯이 사진은 시간을 정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기적'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것들은 빛을 통해 생명을 표현하는 동시에 죽음의 흔적을 지워내는 '영혼의 환상'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모델들을 카메라에 담는 작업은 항상 즐거워요. 일이 아니라 내 취미이자 생활이고 인생이라고 생각하기에 평생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

그는 세계적인 패션 모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 등 톱 모델을 신인 시절 발굴해 스타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보디아노바를 17세 때 처음 만났는데 정말 풍부한 표정과 포즈,놀라운 파워를 보여줬어요. 지금은 아기 엄마가 됐지만 여전히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

거장이 된 비결에 대해서는 "모델의 아름다움과 개성을 사진에 담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처음 보는 모델이라도 감정이 교류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에는 묘한 에너지 같은 걸 느낀다"고 얘기했다.

'와이 낫(Why not)'이 자신의 사진 철학이라는 그는 "패션 사진작가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행의 열차'에 먼저 승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패션은 6개월이란 시차를 두고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고속열차처럼 쏜살 같이 달리는 유행 열차에 탔더라도 대중의 취향을 어떻게 빨리 감지하느냐가 또 중요하지요. " 5월8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는 인체의 아름다움과 에로틱한 에너지를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누디',패션과 정물 · 여체의 환상적인 조화를 담아낸 '리베르토',인물 사진 '스튜디오' 시리즈 등 75점을 선보인다. 작품 창작 과정 등을 담은 영상도 디지털로 편집해 공개한다. 관람료는 없다. 19세 미만 청소년은 입장할 수 없다. (02)3018-0045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