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가 생일 기념일에 차가운 현실을 맞이했다. "(BBC방송)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은 자신의 66번째 생일날인 21일 퇴진을 수용했다. 그는 1978년 권좌에 오른 후 32년 동안 언론 통제와 야당 탄압 등 철권통치를 펼쳤고,올 들어 촉발된 민주화 시위에도 강경진압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그 역시 민주화를 요구하는 재스민 혁명의 불길을 비켜가지 못했다.

◆군부 지지 잃은 게 결정적

CNN에 따르면 살레 대통령은 이날 군 수뇌부와 자신의 연내 퇴진을 비롯한 5개항에 합의했다. 5개항에는 △살레의 연내 퇴진 △민주화 시위 보장 △시위 유혈진압에 대한 진상조사 △시위 사망자에 대한 국가 보상 △살레 가족의 동반 퇴진 등이 포함됐다. 이와 함께 정부는 헌법 및 선거제도 개혁도 추진키로 했다.

지난주까지만 하더라도 정부의 강경진압으로 사그라지는 듯했던 살레 대통령의 퇴진은 군부에 의해 촉발됐다. 육군 제1기갑 사단장인 알리 모흐센 알 아흐마르 소장이 돌아선 게 결정적이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살레의 최측근 장군이 등을 돌렸을 때 이미 살레 정권의 운명은 끝났다"고 지적했다.

군 장성들도 잇따라 시위대 지지를 선언했다. 아흐마르와 함께 군 최고 수뇌부 2명이 시위대 지지 의사를 밝혔고,남동부 하드라마우트주에서도 장교 60명과 경찰 50명이 시위대에 합류했다. 현지 일간 예멘포스트는 21일 "예멘 군부의 60%가 시위대와 뜻을 함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18일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시위대 52명이 숨진 이후 군부가 살레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분석이다.

군부는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압박하는 한편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해 탱크와 장갑차까지 동원했다. 아흐마르는 시위대 지지 선언 직후 탱크를 시위대가 장기 농성 중인 사나대 인근 광장에 배치했다. 또 중앙은행과 국방부 등 주요 시설에도 군 병력을 배치하면서 살레를 압박했다. 결국 살레는 군 수뇌부들과 회담을 갖고 퇴진 요구를 수용했다.

◆향후 예멘 정국은 안갯속

예멘은 군부에 의해 정권 교체가 이뤄지게 됐다는 점에선 지난달 호스니 무바라크가 권좌에서 물러난 이집트와 비슷하다. 그러나 향후 정국은 이집트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이집트에선 군부가 정국을 확실히 통제할 수 있었다"며 "그러나 정국이 불안정한 예멘에서는 오히려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예멘은 알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 가문의 고향이다. 험준한 산악지대가 많아 은신이 용이하기 때문에 알카에다는 아라비아반도지부(AQAP) 본부를 예멘에 두고 있다. 남부지역엔 여전히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무장세력이 활개를 치고 있다. 분단국가였던 예멘은 1990년 북예멘 대통령이던 살레가 남예멘을 무력 침공해 통일에 성공했다. 그러나 지금도 각지에서 크고작은 부족 세력이 난립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예멘 중앙정부의 행정력은 지방에까지 미치지 못한다. 예멘 정부의 군병력(6만6000여명)으로는 알카에다 및 남부 분리독립세력을 누르기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연간 3억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군사 지원이 예멘 정부를 지탱해준 배경이었다. 혼란스러운 예멘 정국 상황으로 아흐마르가 살레 대통령에 이어 권력을 확실하게 잡을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