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와 전쟁을 치르는 정부의 힘이 너무 부친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풀린 돈,이상기후로 뛰는 농수산물값,치솟는 기름값 등에 맞서 싸울 화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이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금리 인상이 너무 늦었고 고환율(낮은 원화 가치)을 지나치게 오래 유지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쓰나미처럼 몰려올 고물가 파도에 대비하기 위해 금리와 환율을 일찌감치 조정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 직후가 생각난다. 한국은행에 대한 금리인하 압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다. 정부는 이성태 전 총재에게 총공세를 폈다. 모 인사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이 전 총재는 이상한 사람이다. 금융위기 전 다른 나라는 다 금리를 내렸는데 혼자만 올렸다. 그리고 사태가 악화되는데도 신속하게 내리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꺼번에 1%포인트를 내리라는 강도높은 압박이 쏟아졌다. "

2008년 10월27일 임시 금통위가 열려 역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75%포인트 내린 배경이다. 이 전 총재는 그 직전에 이런 말을 했다. "과감하게 인하할 겁니다. 그런데 지금 금리를 내리라고 몰아치는 사람들이 올려야 하는 상황이 오면 동의해 줄까요?"

이 총재의 예상대로 금리인상은 물가상승 속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됐다. 정부와 한은은 좀처럼 방향을 틀지 못했다. 2008년 금리인하 총공세를 폈던 측은 금리인상이 필요한 시점에 입을 다물었다. 우리 경제를 회복기 환자에 비유하며 인상 반대론을 펴기도 했다. 금리인상으로 경기회복세의 탄력이 떨어질 것을 더 우려했다. 물가는 뒷전이었다. 그것이 연 2%의 초저금리와 유동성 홍수가 2년 가까이 지속된 배경이다.

2008년 금리를 내릴 때와 같은 속도는 아니더라도 지금보다 조금 더 빠른 선제적 인상이 이뤄졌더라면 물가 부담을 어느 정도 덜었을 것이다. 유동성 홍수를 너무 오랫동안 방치했다는 생각이다.

물론 경제 정책이 어느 쪽으로 결정되든 일정한 손실은 불가피하다. 금리인상으로 8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 빚이 터져버린다면 정권으로선 치명적 손상을 입을 게다. 정부와 한은이 금리인상에 관한 한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가계 빚을 통제하면서 물가 급등에도 미리 대비하는 통화정책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갑자기 기어를 2~3단 올릴 수는 없다. 비록 보폭은 작더라도 발걸음만은 조금 먼저 떼는 안목과 지혜가 정책 당국자들에게 요구된다.

어디 금리뿐인가. 환율정책도 마찬가지다. 물가안정 수단의 하나로 환율 하락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늘고 있다. 수입품 가격을 떨어뜨리자는 얘기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다. 이전부터 제기됐지만 고환율 우위론에 눌려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을 뿐이다. 수출지원이라는 과도한 집착 속에 저환율을 통한 물가대응론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초과이익공유제는 더 큰 문제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너무 나갔다. 불공정 하도급계약을 바로잡아 중소기업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게 바람직하지만 정 위원장이 제시한 처방전은 실현 불가능한 쇼크 요법이다.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기업들이 당초 목표보다 이익을 많이 냈다고 치자.그러면 세금을 더 내게 된다. 정부는 초과 달성한 세금으로 어려운 곳을 어루만져주면 된다. 대 · 중기 동반성장에 대한 과도한 욕심,하루빨리 성과를 얻고 싶은 조급함에 동반성장의 근본 취지마저 훼손되고 말았다.

경제정책이 성과를 내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때로는 곡선으로 달려야 한다. 지나친 대응이나 강압적 수단은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다. 최적의 정책 조합은 마술사의 손끝 떨리는 묘기처럼 어려운 일이다. 과신과 과욕은 마술을 망가뜨린다.

고광철 < 논설위원 겸 경제교육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