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국제 원자재 시장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지진 발생 후 잠시 하락했던 국제유가가 일본의 복구를 위한 석유제품 수입 증가 예상으로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식품과 주요 원자재 가격도 오름세다. 세계 석유 생산의 43%를 차지하는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의 정세 불안이 지속되면서 이곳 정세가 향후 세계 경제 회복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크게 높아진 원자재 시장의 불안정성은 이미 투기자금을 자석처럼 끌어들인지 오래다. 식품 에너지 광물 등 각국 경제활동에 없어서는 안 되는 대부분의 원자재들은 대규모 초국적 자본의 투기 대상으로 전락했다. 국제사회는 이에 대한 아무런 공동 대응을 마련하지 못하고 오히려 전 세계에 걸쳐 제각기 자원 확보를 위한 보이지 않는 전쟁에 빠져들고 있다.

1998년 이후 500만명 이상의 대학살이 자행된 콩고민주공화국 사태 뒤에도 자원 확보를 위한 서방 기업들과 이를 돕는 서방 정부들의 보이지 않는 개입이 숨어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전 세계 코발트 매장량의 3분의 1을 가지고 있다. 코발트는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 한 대에 2.5㎏이 들어갈 정도로 특수 배터리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광물이다.

또한 휴대폰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콜탄은 전 세계 매장량의 80%가 이 지역에 있다. 영국의 광물 기업 AMC는 콩고에서 불법으로 생산된 주석을 거래한 것으로 밝혀졌는데,주석은 랩톱 컴퓨터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되는 광물이다.

아프리카의 수단 남부 다푸르 지역 역시 자원확보를 위한 강대국들의 보이지 않는 각축이 진행 중인 곳이다. 주로 목축을 하던 북쪽 아랍계 원주민들과 농사를 짓던 남쪽 아프리카계 원주민들 사이에 평화로운 공존을 해오던 이 지역에 오랜 가뭄으로 반목이 시작됐다. 2003년 이후 수단 정부의 지원을 받은 아랍계 군벌들에 의해 48만명 이상의 무고한 주민들이 학살되고 300만명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다푸르 지역의 석유 매장량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버금가는 규모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수단 정부와 가까운 중국과 이를 견제하는 미국 간에 첨예한 물밑 대립이 국제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카스피해 접한 러시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및 아제르바이잔 등 5개 연안국은 카스피해가 바다인지 호수인지에 대한 지위 문제를 두고 오랫동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카스피해가 바다로 인정되면 수면을 해안선에 따라 분할하게 돼 이란이 가장 불리해지고,만약 호수로 인정되면 개발된 자원을 공동으로 배분해야 하기 때문에 이미 많은 자원을 개발하고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이 불리해진다.

카스피해의 법적 지위가 어떻게 판결나느냐에 따라 이 지역의 천연가스가 유럽으로 수출되는 루트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스 파이프라인을 둘러싼 러시아와 미국 간의 '신(新)냉전'이 주목된다. 최근 러시아는 시베리아의 원유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중국 다칭으로 수송하기 시작함으로써 중국과 돈독한 자원동맹국이 됐으며,중국과 경쟁했던 일본은 큰 실망감을 맞보았다.

대부분의 자원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자원확보 전쟁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최근 우리나라가 중동의 아랍에미리트(UAE)와의 협상에서 10억배럴 이상의 유전을 확보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원확보는 오랜 시간의 노력과 신뢰를 토대로 할 때 가능하다. 이번 UAE 유전 확보도 정부의 집념에 한국석유공사와 UAE 국영석유회사 간 다져온 신뢰관계가 더해져 가능했을 것이다. 이를 계기로 자원 확보를 위한 더욱 치밀하고도 효과적인 국가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다.

백훈 < 중앙대 국제관계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