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레스 아구도 HARI(필리핀 현대차 딜러) 사장은 사업확장 계획을 짜느라 어느 때보다 바쁘다고 했다. 현지 자동차업계 1,2위인 도요타와 미쓰비시가 일본 지진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으면서 현대자동차(업계 3위)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는 "엑센트,투싼 등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며 "올 매출이 20%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말레이시아에선 수입업자들 사이에서 포스코 제품 사재기가 벌어지고 있다. 이종민 KOTRA 쿠알라룸푸르 센터 차장은 "일본의 재건사업으로 철강재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본 현지 기업인들이 가격 급등에 대비해 제품을 미리 사두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메이신위 중국 국제무역경제협력연구원 연구원은 최근 "일본의 복구가 늦어지면 중국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부품 · 소재) 독점력이 강화될 것"이라며 경계의 뉘앙스가 강하게 풍기는 논평을 내놨다.

독일 언론들의 논조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일간지 함부르크아벤트블라트는 독일 자동차산업 전문가들을 인용,방사성 물질에 노출된 일본산 부품에 대한 검역 강화 문제가 대두될 것이라며 차세대 전기자동차용 모터와 배터리 개발에서 강한 협력을 유지해왔던 독일과 일본의 관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배터리 등 전기차 부품은 대표적인 한 · 일 경합 제품이다.

일본 지진과 원전사고가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세계의 이목은 '일본 지진 이후'의 글로벌 경제 질서가 어떻게 재편될지에 쏠리고 있다. 일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해외 각국에선 일본의 공백을 한국이 메울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의 '반사이익'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한국 기업들은 어느 곳 하나 '반사이익'이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일본 기업들은 과거 슈퍼엔고 등 미증유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더 강한 체질을 일궈내며 한 단계 도약했다"며 "당장의 반사이익 가능성에 취할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근시안적 셈법에 기대지 않고,긴 안목의 경쟁력을 고민하는 기업들의 모습이 든든하다.

박동휘 산업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