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하면 왜 신화부터 떠오를까. 신화 읽기가 유행하면서 그리스의 신화와 역사가 어느새 동일하게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 문명은 신이 기적처럼 나타나 인간들에게 특별한 재능을 부여함으로써 탄생한 것이 아니다. 발칸 반도에서 내려온 한 원시 부족이 에게해와 지중해가 있는 '헬라스'(그리스의 옛 지명)에 정착하고 유목민에서 농민으로,교역을 위해 바닷길을 가르는 뱃사람과 시민으로 성장하며 살아남았던 인간들의 생생한 역사다.

《그리스인 이야기》는 30년 동안 스위스 로잔대에서 그리스어와 그리스 문학을 가르쳤던 앙드레 보나르(1988~1959)가 쓴 세계적인 고전이다. 1954년부터 죽기 직전까지 세 권으로 출간한 그리스 통사로,출간 50여년 만에 국내에서 처음 번역 출간됐다.

저자는 기원전 8세기에 쓰여진 《일리아스》 속 트로이 전쟁이 신화가 아니라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 강조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일리아스》는 호메로스가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구전설화와 여러 에피소드를 정교하게 엮어 만든 서사시다. 이는 기원전 12세기 초 본토 그리스인인 아카이아인들이 같은 그리스 민족의 도시 일리온(트로이)을 침략한 전쟁기이다. 《일리아스》를 읽은 19세기 고고학자들은 트로이로 달려가 3000년 동안 덮여 있던 땅을 파내고 화재의 흔적을 간직한 도시를 찾아냈다.

문학 작품 속에서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와 트로이의 둘째 왕자 파리스의 연애가 전쟁의 원인이라고 기록됐다. 하지만 저자는 목마를 앞세워 트로이 성을 불태운 전쟁의 원인은 순전히 경제적인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리스는 올리브와 포도나무 이외에는 별다른 농작물을 기를 수 없었던 척박한 땅이었다. 밀과 보리 등 다양한 곡식과 옷감,무기를 만들 주석과 철 등을 얻는 방법은 해상 무역과 전쟁뿐이었다. 그런데 흑해로 가는 입구에 자리잡은 트로이인들이 통행세를 징수하고 약탈을 자행하자 전쟁이 불가피했다는 얘기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계급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해결책에서 시작됐다. 기원전 8세기 그리스에서는 부와 공직을 장악한 귀족들과 이들보다 수가 훨씬 많은 자영농 · 장인 · 뱃사람 등 시민계급 사이의 계급투쟁이 심각했다. 민주주의는 사회안정을 위해 일단 돈이 있는 시민에게 참정권을 주는 데서 출발했다. 그리고 점차 금전적인 유인책을 써가며 다양한 시민들을 민회와 시민재판소로 끌어들였고,민주주의는 확산됐다.

다만 혹독한 노예제도가 아테네 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있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도시국가 및 페르시아 등 타 민족과의 전쟁으로 획득한 포로들,몰락한 자영농들은 사실상 아테네의 생산 활동을 전담하며 짐승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기원전 5세기에 이르면 아테네 거주자 40만명 가운데 시민은 3만명에 불과했다.

이 책은 그리스 문명의 전 영역을 빠짐없이 다루는 딱딱한 역사책이 아니라 대중 교양서에 가깝다. 그리스 최고의 서정시인 아르킬로코스,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인 헤로도토스,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철학자 소크라테스 등 수많은 그리스인들을 통해 그리스 문명사 전체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그리스 문명의 특징은 인간을 출발점으로 삼아 자연에 맞서 인간의 능력을 키우고 인간다움을 완성하려 한 휴머니즘"이라며 "세계와 인간이 거울처럼 마주보고 서로 변화시켜 나가는 융합과 조화야말로 그리스 문명의 본질"이라고 설명한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