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저녁 서울 구로동 베스트웨스턴호텔 릴리홀.중년 남성들이 무리지어 나비 넥타이를 매고 무대에 등장했다. 이들은 구로디지털단지 내 최고경영자(CEO)들로 이뤄진 합창단 'G-하모니' 회원들.공연장에 바리톤 김동규가 부른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우렁찬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오자 관객들은 가곡의 멜로디에 푹 빠져들었다.

이도 잠시."분위기를 바꿔볼까요. " 지휘자의 한 마디에 '아빠의 청춘','울릉도 트위스트' 등 트로트 가요가 이어졌다. 중년을 넘긴 사장님들이 앙증맞은 율동까지 선보이자 여기저기에서 폭소가 터졌다. 노래가 끝나자 '앵콜','앵콜'소리가 쉴새없이 이어졌다. 이날 공연은 구로단지 내 중소기업 문화 요소 확대를 위한 업무 협약식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G-하모니'는 지난해 12월 정보기술(IT)업체 투비플러스를 운영하는 정창진 대표의 제안으로 결성됐다. 정 대표는 지난해 초부터 지인들과 함께 노래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음악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는 구로단지를 관리하는 박찬득 한국산업단지공단 서울본부장에게 "스트레스가 많은 중소기업 CEO들이 함께 모여 음악을 하면 좋을 것"이라고 의견을 냈고,박 본부장이 "단지 내 기업인들을 모아 보겠다"고 화답해 곧바로 구성에 들어갔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단원 모집 공고를 낸 지 한 달이 안돼 CEO 27명이 모였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가산문화센터 소극장에서 2시간씩 빠지지 않고 연습한다. 시스템 솔루션 복구 전문업체인 솔로세움의 서동현 대표는 "중소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복잡하고 힘든 일이 많은데 합창을 하면 스트레스가 싹 날아간다"고 말했다.

경영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게 단원들의 설명이다. 이종근 이소프팅 대표는 "오늘도 사장이 공연한다고 전 직원이 왔다"며 "에너지도 생기고 직원들과의 소통도 원활해졌다"고 즐거워했다. 합창을 통해 마음을 모으다 보니 금방 '형,동생'이라고 부를 만큼 가까워졌고 자연스럽게 사업에 관한 얘기도 오고 간다.

콜센터 구축 사업을 하는 김성태 센터링크 대표는 "같은 중소기업 사장들끼리 고민을 나눌 수 있어 좋다"며 "서로 회사 홍보도 하고 거래처 추천도 해줘 음악 외에 얻는 게 많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몸 상하는 술 담배에만 의존하지 말고 음악이 주는 환희를 꼭 경험해 보라"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남윤선/정소람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