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 진지 진평 등 3명의 왕과 태자 동륜,4명의 화랑 우두머리까지 모두 8명과 놀아나며 신라 왕실을 뒤흔든 여인.바로 미실이다. 화랑세기는 '백 가지 꽃의 영겁이 뭉쳐 있고 세 가지 아름다움의 정기를 모았다'고 그녀의 용모를 그렸다. 방사(房事)에 뛰어날 뿐 아니라 수기 700편을 남긴 탁월한 문장가였다고 한다. 작가 김별아는 소설 '미실'에서 "그녀의 치마가 펄럭였을 때 세상은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돌이킬 수 없는 폐허처럼,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끝까지 갔다"고 썼다. 희대의 팜 파탈(요부)이라 할 만하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의 정부(情婦) 에밀리 샤틀레는 과학적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것으로 이름을 날렸다. 볼테르를 만난 건 결혼해 아이를 두 명 두었을 때다. 그들은 18세기의 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눴다. 그렇다고 애정행각만 벌인 건 아니다. 둘이 함께 머물던 시레이성 연구소에 2만여권의 책을 모아 놓고 철학과 신학,물리학,역사학 등을 경쟁하듯 연구해 많은 성과를 냈다. 이 정도면 요부보다는 학문적 동반자에 가깝다.

플레이보이 모델로 활동하던 애너 니콜 스미스는 26세 때 텍사스 석유거부 하워드 마셜과 결혼하면서 팜 파탈로 불렸다. 나이 차이가 무려 63세에 달했다. 그녀는 하워드 사후 5억달러(약 5620억원)의 유산을 놓고 유족과 분쟁을 벌이던 중 39세에 플로리다의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독일 사업가가 그녀의 유품과 함께 50만달러(약 5억6000만원)에 사들인 일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하워드가 보석을 사 줬지만 하루에도 15~20번씩 전화를 해서 미칠 것 같다. '

200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씨가 낸 책 '4001'이 연일 화제를 뿌리고 있다. 지도층 인사들이 여럿 등장하면서 그들의 사생활에 대한 관음증적 흥미를 유발한다. '그는 나를 단순히 일 때문에 만나는 것 같지 않았다''그날 이후로 나는 청바지에 운동화만 신었다' 등의 표현도 상상력을 자극한다. 폭로를 통한 복수인지 노이즈마케팅을 이용한 책 팔아먹기인지 종잡을 수 없다.

치명적 매력에 빠지면 도무지 정신을 못차리는 게 사람 생리다. 그래서 십중팔구 나락으로 떨어진다. 짜릿한 자극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다. 장자연 가짜 일기,상하이 스캔들에 이어 신정아씨 책까지 나와 세상이 더 어수선해지고 있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