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정신이란 말이 있다. 이를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해보면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최상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전문가적 직업정신이라 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엔지니어란 직업이 시대의 기술 혁신과 트렌드를 창출해 가는 혁신가로서, 때로는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여주는 인류 문명의 기여자로 존경받으면서 발전해왔다.

필자는 퀄컴에 근무하면서 회사 안에서 엔지니어가 차지하는 비중을 새삼 실감하게 됐다. 1년에 총 매출의 20% 이상을 연구 ·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으며 엔지니어를 추가로 고용하는 것은 다른 분야보다 훨씬 쉽다. 회장부터 중요 직책에 있는 분들의 대다수가 엔지니어 출신이다. 회사가 연구소 같은 분위기다.

IT 강국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직도 엔지니어라는 직업이 외국의 엔지니어만큼 존경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엔지니어란 직업으로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기가 참 힘들고 기업 경영은 엔지니어가 하기보다는 전문경영인이 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이런 현상은 최근 3년째 서울대 공대 박사 과정의 미달 사태에서 그 현실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선 성공 기준이 연봉이 높은 직종에 입문하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창조적인 직종,또는 자부심이나 사회적 책임감 등의 꿈을 갖고 사회에 입문하기가 좀처럼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 보니 엔지니어란 직업도 '직장인'의 한 직업군 중 하나로만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몇 백년의 자본주의 진화과정을 거치고 무엇보다 새로운 도전과 벤처기업을 북돋우는 서구 사회에서는 엔지니어란 직업이 혁신의 중심이 되기 때문에 언제나 존중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막 산업화의 양적 성장이란 빠른 수레 바퀴를 잠시 멈추고,주위를 돌아보며 균형과 분배,그리고 질적 수준을 논하게 됐다. 기술력 또한 따라가는 자 (follower)가 아닌 앞서가는 자 (leader)로서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고민하는 시점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전의 100년에 걸쳐 개발된 기술 수명이 10년,아니 5년의 주기로 바뀌어가는 급박한 변화의 상황에 우리 모두 놓여있는 셈이다.

이럴 때 한국이 글로벌 시대에서의 생존과 새로운 원천 기술의 보유에 힘쓰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며 이를 통한 국가 경쟁력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곧 '장인정신'을 갖춘 평생 직업으로서의 엔지니어 배출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뿐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 끊임없는 산 · 학 연계 프로그램을 통한 공대 지원 및 기초 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창조적 신기술이 대접받고 새로운 도전의 창업 정신이 존중받을 수 있는 성숙한 사회 문화 환경을 조성하는 일도 절실하다.

지금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서 이 모든 미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은 어디에 있는지 살필 때다. 기술 강국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싶은가. 사람이 우선이다. 사람에 투자하자.

차영구 < 퀄컴코리아 사장 ykcha@qualcom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