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재스민 혁명과 일본 대지진으로 가려졌던 유럽 재정위기가 또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벌써부터 3차 위기가 가시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고개를 드는 상황이다.

이번에 주목을 끄는 나라는 스페인이다. 스페인까지 전염될 경우 지난해 겪었던 두 차례 재정위기와 달리 역외국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랜드 내 경제소국과 경제대국의 중간자 역할(balancer)을 하는 스페인이 위기에 휩싸이면 경제대국에까지 전염문제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닥친 유럽 금융회사들이 마진 콜(증거금 부족현상)이 발생하면 디레버리지(자본회수) 대상으로 어느 국가를 선택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역외국에 미칠 충격을 추정할 때 아주 중요하다. 금융회사들이 마진 콜을 당할 경우 외부에서 긴급자금 지원을 받지 못하면 보유자산을 처분해 응해야 한다.

이때 시장 상황을 보면 유럽 재정위기가 발생한 국가들은 보유자산을 팔려는 사람이 많고 사려는 사람은 적기 때문에 대규모 초과공급이 발생한다. 이 시장에서 금융회사들이 마진 콜에 응하기 위해 보유자산을 처분하면 그 과정에서 가격이 더 떨어지기 때문에 당초 계획분보다 더 많이 팔아야 맞출 수 있다.

반대로 한국 같은 경제 여건이 좋은 국가들은 팔려는 사람이 적고 사려는 사람이 많아 초과 수요가 발생하거나,최소한 위기가 발생한 국가보다 수급 사정이 좋다. 이 때문에 마진 콜을 당한 금융회사들이 이 국가를 디레버리지 대상으로 선택하게 되고,이들 국가는 기대와 달리 외국자금 이탈로 주가는 떨어지고 환율은 올라가 뜻하지 않은 상황을 맞게 된다.

중요한 것은 과연 이런 사태가 발생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두 가지 기준에서 아직까지 그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된다. 무엇보다 아시아 위기 재발 방지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를 본보기로 유럽이 조성해 놓은 구제금융 규모가 1년 전에 비해 많아졌고 수혜 조건도 크게 완화됐다.

유럽통합 자체도 쉽게 붕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럽통합은 자유사상가들에 의해 '하나의 유럽구상'이 처음 나온 20세기 초를 기점으로 하면 100년,이 구상이 구체화된 1957년 로마조약을 기준으로 하면 5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그만큼 유럽 국민의 피와 땀이 맺혀 있는 것이 바로 유럽통합이다.

그동안 유럽통합은 두 가지 경로로 추진돼 왔다. 하나는 회원국 수를 늘리는 '확대' 단계로 초기 7개국에서 27개국으로 증가했다. 다른 하나는 통합을 끌어올리는 '심화' 단계로 유로화로 상징되는 경제적 통합에 이어 리스본 협약이 발효되면서 정치적 통합에 대한 기대까지 부풀리게 했고,사회적 통합까지 달성한다는 것이 위대한 유럽구상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재정위기가 언제든지 불거질 소지는 남게 된다. 특정 지역 블록에서 단일통화를 도입해 가치를 유지하려면 회원국 간 서로 다른 경제여건을 통일시켜야 가능하다. 유로화만 하더라도 회원국이 되기 위해 환율 · 금리 · 물가 · 재정수지를 경제수렴조건에 충족시킬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문제는 재정위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신규 가입은 고사하고 유로랜드 회원국이라 하더라도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무늬만 회원국(bad apples)'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이 무늬만 회원국을 끌어가는 과정에서 이제는 '건전한 회원국(good apples)'까지 전염되는 임계 상황을 맞고 있다.

그런 만큼 유럽통합은 깨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현실적 제약요건을 감안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러 방안이 논의되고 있으나 조지 소로스 등이 제시하는 투 트랙,즉 건전한 회원국은 계속 통합 단계를 밟아가고 차제에 무늬만 회원국은 탈락시키는 방안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통합이론상 유럽처럼 경제발전 단계가 비슷한 국가끼리 결합하면 무역창출 효과가 무역전환 효과보다 커 역내국과 역외국 모두에 이득이 된다. 이 때문에 앞으로 투 투랙이 모색되는 과정에서 무늬만 회원국은 단기적으로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게 되지만 이를 계기로 재가입을 위해 이전보다 더 노력하는 '충격요법(shock doctrine)'이 돼 유럽통합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투자 관점에서 각종 리스크는 세 단계로 구분된다. 추세 자체를 꺾는 '하이 리스크',변동성만 확대시키는 '미들 리스크',그냥 스쳐 지나가는 '로 리스크'다. 아직까지 유럽재정위기는 '미들 리스크'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3차 유럽재정위기가 발생해 한국 증시가 크게 조정받을 것이라는 시장 일각의 리스크 데믹은 경계돼야 한다.

한상춘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