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에너지정책이 과거로 유턴할 조짐이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그동안 소외됐던 화력발전에 대한 투자가 증가할 전망이다. 석유와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등 화석연료 수입도 늘릴 방침이다. 하지만 탄소가스 감축이라는 글로벌 트렌드에 어긋나는 데다 에너지 원료시장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화력발전소를 돌려라

요미우리신문은 27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로 전력이 부족해지면서 일본 에너지 정책의 근본이 요동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일단 원전 대신 화력발전소 가동을 늘리는 방식으로 전력 확충에 나설 방침이다. 우라늄 대신 석유나 LNG를 때서 전기를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도쿄전력은 시나가와 가시마 요코스카 등 지바현 인근에 위치한 5개의 화력발전소를 우선적으로 복구할 계획이다.

이 발전소들의 최대 전력 생산량은 총 1340만㎾ 수준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전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중대한 과제를 떠안게 됐다"고 전했다.

◆친환경 트렌드에 역행

화력발전은 원전에 비해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한다. 아사히신문은 "원전의 발전량을 모두 석유를 이용한 화력발전소로 바꾸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연간 2100만t 증가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린'이라는 글로벌 트렌드와는 거꾸로 가는 셈이다. 특히 일본은 '교토 의정서'의 본산을 자임하며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주도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전 세계 발전량 가운데 화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1971년 45.1%에서 2007년엔 33.5%로 감소했다. 반면 원자력발전은 같은 기간 0.5%에서 5.9%로 늘었다. 화력발전 대신 신재생에너지에 집중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없다. 아직 발전 규모가 미미하고 공급량을 대폭 늘리기에는 기술적인 과제가 산적해 있다.

◆우려되는 경제 파장

화력발전으로 전기를 충당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화력발전은 원전에 비해 원료 가격 대비 발전량이 절반 이하에 불과하다. 발전 단가가 높아져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일본 제조업체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요미우리신문은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큰 사안이어서 일본 정부가 무작정 화력발전에 매달릴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수급 상황도 좋지 않다. 원유 수입량의 90%를 의존하고 있는 중동 지역 정세가 불안하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세계 3위 경제대국인 일본이 화석연료를 사 모으기 시작하면 가격도 뛰게 된다. 화력발전만으로는 모자란 전력을 다 채울 수도 없다.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여름철에 대비하려면 화력발전소를 최대한 쥐어 짜더라도 1000만㎾ 이상의 전력이 더 필요하다. 세계 LNG 수요의 35%를 차지하는 일본이 LNG 수입을 늘리면 가격이 급등하고 이는 한국 LNG 수급에도 차질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