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배를 이용할 줄 아는 리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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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 시중은행의 A지점에서 제주도로 가을 야유회를 떠났다. 그런데 돌아가야 하는 일요일에 제주도에 강풍에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월요일 아침까지는 지점으로 돌아가 업무를 시작해야 하는데 비행기가 뜰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A지점 직원들은 하늘만 처다 보고 발만 동동 굴렀다.
제주도에는 A지점 말고도 B 지점에서도 야유회를 왔다. B지점장은 언제 뜰지 불확실한 비행기는 포기하고 일요일 오후 배편을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배로 부산으로 이동하고 다시 심야버스를 타고 서울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직원 전원이 간단히 식사를 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상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A지점은 월요일 아침에 직원들이 도착하지 않아 비상조치로 인근지점에서 직원 몇 명을 차출하여 긴급하게 문을 열고 영업을 시작했다. 뒤늦게 비행기타고 도착한 직원들은 본점 인사부의 징계를 받았고, 특히 지점장은 중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각 지점에는 앞으로 섬으로 야유회를 가려면 본점의 허락을 받고 가도록 지침이 내려졌다.
비행기를 기다릴 것이냐, 아니면 배를 탈 것인지 리더가 판단할 일이다. B지점장은 무엇이 최선의 방법인지 상황을 빨리 파악하여 다른 교통수단을 찾아냈지만, A지점장은 비행기만 기다리다 결국 직원 전체가 징계 받는 결과를 만들었다. 만약 은행의 한 지점이 아니라 위기상황에서 국가의 리더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피해는 국민이 그대로 받게 되는 것이다.
세계에서 일본처럼 재난방재시스템이 잘 짜여진 나라도 드물다. 워낙 크고 작은 지진이나 태풍이 자주 발생하는 나라이다 보니 국가 전체가 정해진 매뉴얼대로 움직여진다고 말할 정도이다. 하지만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일 때는 별 문제가 없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상황일 때는 이 시스템이 도리어 발목을 잡는 경우가 생긴다.
이번 일본의 지진과 원전사태에서 일본 정부는 신속한 지원을 바라는 피해지역 지방자치단체의 속을 태웠다. 임기응변적인 신속한 대응보다는 정해진 지침, 즉 매뉴얼에 따르는 바람에 구호를 바라는 피해지역 주민들을 초조하게 한 것이다. 정부보관 및 민간단체의 비축물량이 충분했고 지방자치단체에서 방법론까지 제시하며 신속하게 구호물품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지만 정부의 초기 대응은 절차를 따지며 검토해 보겠다는 말뿐이었다.
국가나 기업이나 시스템이 잘 되어있어도 그것을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느냐, 아니면 계속해서 헤매느냐는 리더의 판단에 달렸다. 그저 비가 그치기를 바라며 하늘만 처다 보거나, 위기상황에서 매뉴얼에만 의지해 리더가 적절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직원들은 다른 행동을 할 수가 없고 리더만 처다 보게 된다. 일본 정부의 늑장처리가 그러하고, 하늘만 처다 본 지점장이 그러했다.
사람은 한 가지 생각에 묶여 있으면 다른 생각을 쉽게 할 수가 없다. 비행기만 이용하던 사람이 비행기가 뜨지 못하면 배를 이용할 생각을 금방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리더는 위기상황이라도 매뉴얼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정해진 틀 안에서의 사고가 아니라,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생각 속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닫힌 사고가 아니라 열린 사고가 필요하고, 리더는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hooam.com/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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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는 A지점 말고도 B 지점에서도 야유회를 왔다. B지점장은 언제 뜰지 불확실한 비행기는 포기하고 일요일 오후 배편을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배로 부산으로 이동하고 다시 심야버스를 타고 서울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직원 전원이 간단히 식사를 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상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A지점은 월요일 아침에 직원들이 도착하지 않아 비상조치로 인근지점에서 직원 몇 명을 차출하여 긴급하게 문을 열고 영업을 시작했다. 뒤늦게 비행기타고 도착한 직원들은 본점 인사부의 징계를 받았고, 특히 지점장은 중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각 지점에는 앞으로 섬으로 야유회를 가려면 본점의 허락을 받고 가도록 지침이 내려졌다.
비행기를 기다릴 것이냐, 아니면 배를 탈 것인지 리더가 판단할 일이다. B지점장은 무엇이 최선의 방법인지 상황을 빨리 파악하여 다른 교통수단을 찾아냈지만, A지점장은 비행기만 기다리다 결국 직원 전체가 징계 받는 결과를 만들었다. 만약 은행의 한 지점이 아니라 위기상황에서 국가의 리더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피해는 국민이 그대로 받게 되는 것이다.
세계에서 일본처럼 재난방재시스템이 잘 짜여진 나라도 드물다. 워낙 크고 작은 지진이나 태풍이 자주 발생하는 나라이다 보니 국가 전체가 정해진 매뉴얼대로 움직여진다고 말할 정도이다. 하지만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일 때는 별 문제가 없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상황일 때는 이 시스템이 도리어 발목을 잡는 경우가 생긴다.
이번 일본의 지진과 원전사태에서 일본 정부는 신속한 지원을 바라는 피해지역 지방자치단체의 속을 태웠다. 임기응변적인 신속한 대응보다는 정해진 지침, 즉 매뉴얼에 따르는 바람에 구호를 바라는 피해지역 주민들을 초조하게 한 것이다. 정부보관 및 민간단체의 비축물량이 충분했고 지방자치단체에서 방법론까지 제시하며 신속하게 구호물품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지만 정부의 초기 대응은 절차를 따지며 검토해 보겠다는 말뿐이었다.
국가나 기업이나 시스템이 잘 되어있어도 그것을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느냐, 아니면 계속해서 헤매느냐는 리더의 판단에 달렸다. 그저 비가 그치기를 바라며 하늘만 처다 보거나, 위기상황에서 매뉴얼에만 의지해 리더가 적절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직원들은 다른 행동을 할 수가 없고 리더만 처다 보게 된다. 일본 정부의 늑장처리가 그러하고, 하늘만 처다 본 지점장이 그러했다.
사람은 한 가지 생각에 묶여 있으면 다른 생각을 쉽게 할 수가 없다. 비행기만 이용하던 사람이 비행기가 뜨지 못하면 배를 이용할 생각을 금방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리더는 위기상황이라도 매뉴얼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정해진 틀 안에서의 사고가 아니라,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생각 속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닫힌 사고가 아니라 열린 사고가 필요하고, 리더는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hooam.com/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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