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경험도 없는 세계 랭킹 100위의 무명에 가까운 선수에게 신지애가 일격을 당했다. '파이널 퀸' 신지애가 28일(한국시간) 미국 LPGA투어 KIA클래식 4라운드에 1타차 선두로 들어갈 때만 해도 싱거운 승부를 점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신지애의 '우승 방정식'이 통하지 않았다. 저절로 무너져야 할 선수가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을 만들어냈다. 신지애가 따라붙어도 악착같이 떨어지지 않았고 신지애가 역전시키면 자신도 역전을 시켰다.

◆발목 잡은 퍼팅 난조

미 캘리포니아주 시티오브힐스의 인더스트리힐스GC의 18번홀(파5 · 518야드) 그린의 장면은 신지애와 독일 출신 산드라 갈이 펼친 이날의 승부를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100야드 이내에서 둘 다 완벽한 버디찬스를 만들어 연장전이 확실해 보였다. 신지애가 100야드에서 친 세 번째 샷이 핀을 지나쳐 떨어진 뒤 백스핀을 먹고 굴러 내려와 홀 1.2m 앞에서 멈췄다. LA에서 몰려든 교포들은 '드디어 끝났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데 갈이 83야드에서 친 샷은 홀 60㎝ 뒤쪽에 떨어진 뒤 백스핀을 먹고 홀에 빨려들어갈 것처럼 홀을 스쳐 지나 60㎝ 옆에 붙었다.

신지애는 마지막 내리막 퍼트를 남기고 그답지 않은 행동을 보였다. 한 차례 어드레스를 시도하다가 풀었다. 특유의 미소를 보였지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날 하루 종일 퍼팅에 애를 먹었던 터라 자신감이 더욱 없어 보였다. 17번홀까지 신지애는 31개의 퍼팅을 했다.

다시 어드레스를 취한 신지애가 다소 강하게 퍼팅하는가 싶더니 공이 홀 우측 모서리를 맞고 튕겨나가고 말았다.

◆명문대 출신'미녀 스타' 탄생

미국 상위 20위 내에 드는 '명문' 플로리다대에서 광고학을 전공한 산드라 갈은 우승 퍼팅을 성공시키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2008년 데뷔 이후 69개 대회 만에 감격의 우승컵을 안았다. 우승상금은 25만5000달러.

갈은 '거함' 신지애를 역전우승으로 격침시키며 스타 선수로 급부상했다. 183㎝의 늘씬한 몸매에 빼어난 미모까지 갖춘 갈은 그동안 수영복 누드 화보집에 자주 등장할 정도로 '섹시 골퍼'로 알려져 있다. 독일 출신으로는 티나 피셔 이후 두 번째 챔피언이다.

◆역전…재역전…진땀 승부

신지애가 역전의 기회를 잡은 것은 13번홀(파3)이었다. 신지애는 1.8m 버디를 잡았고 그린을 놓친 갈은 1.2m 파 퍼팅을 놓치며 순식간에 공동선두가 됐다.

산드라 갈이 14번홀(파4)에서 캐디와 클럽 선택을 놓고 의견을 교환한 뒤 친 두 번째 샷은 그린을 훌쩍 넘어가 갤러리들 사이에 떨어졌다.

갈은 왼발이 낮은 내리막 라이에서 로브샷을 했다. 갈의 공은 3.5m가량 멀어졌다. 이 지점에서 그는 파를 세이브했고 신지애의 버디 퍼팅은 홀을 외면했다.

그래도 신지애는 15번홀(파3)에서 8m 긴 버디퍼트를 떨구며 주먹을 불끈 쥐고 어퍼컷을 날렸다. 1타차 단독선두.갈은 16번홀(402야드)을 승부처로 만들었다. 3m 버디를 침착하게 성공시키며 1.5m 버디 퍼팅을 남겨둔 신지애를 압박했다. 신지애는 내리막 슬라이스 라인이라 홀 왼쪽을 겨냥했으나 공은 속절없이 홀 우측으로 흘러버렸다.

신지애는 퍼팅이 난조를 보이는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선전했으나 집요하고 끈질긴 갈의 도전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