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서 대형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몇 년 전 마음을 접었던 모텔 사업을 요즘 다시 추진 중이다. 과거에는 모텔업을 하면 1금융권에서 대출받기가 어려웠는데 요즘은 은행들이 먼저 나서 대출을 해준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단순히 문턱만 낮아진 게 아니다. A씨는 요즘 '은행 쇼핑'에도 나섰다. 인근 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지점장이 번갈아 집까지 찾아와 금리를 최대한 우대해주겠다고 제안해왔다. 그는 "나 같은 자영업자가 시중은행을 상대로 '금리입찰'까지 부칠 수 있으니 세상이 변하긴 많이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A씨가 '호강 아닌 호강'을 하게 된 건 국민은행(KB)과 신한은행(SH)이 '대출 전쟁'을 벌이면서다. 두 은행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대출 고객 유치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른바 'K-S 전쟁'이다.

고려대(K) 출신의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과 서울대(S) 출신의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자존심이 걸려 있어 더욱 물러날 수 없는 싸움이 됐다. 금리 우대는 물론 대출 한도 확대,설정비 지원 등 가능한 방법을 모조리 동원하는 이유다.

양 은행 관계자는 "최근 시장에서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같은 대출 고객을 사이에 두고 부딪치는 사례가 많아졌다"며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각각 경영진 구성 및 외환은행 인수 문제로 전열을 가다듬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우량 대출 고객을 최대한 확보하자는 전략이 더해진 것도 두 은행 간 경쟁에 불을 붙였다"고 말했다.

선제공격은 지난해 말 신한은행이 시작했다. 내분 사태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영업력을 보여주자는 취지였다. 올 들어 1월 서진원 신한은행장,지난달 한 회장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공격의 양상은 더욱 거세졌다. 이에 국민은행도 맞불을 놨다. 지난해 '빅배스(big bath · 새로 취임한 최고경영자가 자신의 성과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이전의 부실을 한꺼번에 털어내는 것)'로 공격경영의 토대를 마련한 어 회장과 민병덕 국민은행장이 올 들어 본격적으로 자산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전쟁의 선봉장도 최고경영진들이 직접 맡았다. 올해 중소기업 대출 2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는 국민은행의 경우 지난해 어 회장이 임원들을 이끌고 지방을 돌며 직접 대출 유치 작전을 펼쳤다. 서진원 신한은행장 역시 전국을 순회 중이며 한 회장도 '현장경영'을 펼칠 계획이다.

각 은행 본점은 지원사격에 나섰다. 국민은행은 최근 핵심성과지표(KPI · key performance indicator)에서 수익성 지표 항목 비중을 300점에서 360점으로 올렸다. 신한은행도 보통 고객이 부담하는 설정비를 본점이 지원해주고 있다. 각 지점이 수익성 걱정 없이 마음놓고 영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지난 1월 '파워업 중소기업 지원대출''위풍당당 사업자 대출' 등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위한 대출 상품을 각각 내놓고 보증료 지원 등의 혜택도 제공하고 있다.

물론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은 각 영업점이고 주 무기는 금리 인하다. 양 은행 지점장들은 서로 "상대 은행이 금리를 덤핑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워낙 금리를 낮게 주니 눈앞에서 어쩔 수 없이 고객을 빼앗기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얘기다.

특히 중소기업 대출 시장에서는 신한은행이 공격하고 국민은행이 방어하는 형국이고,자영업자 시장에선 국민은행이 공격하고 신한은행이 방어전을 펼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신한은행이 중소기업 시장에서 거의 최저금리를 제시해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자영업자 대출의 경우 국민은행이 워낙 공격적이어서 신한은행은 신촌,이대,홍대 등 이른바 특화상권의 우량 고객을 중심으로 대출한도 등 금리 이외의 혜택을 제공하는 차별화 전략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유창재/이태훈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