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국제 신공항 건설이 백지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면서 정치적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청와대와 정부는 '경제성'을 입지 선정 판단 기준으로 삼겠다고 했으나 결론이 백지화 쪽으로 기울기까지 경제성만 고려됐다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정치 전문가들은 신공항 건설 백지화를 대표적인 정치적 계산의 산물로 보고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표를 잃을 수도 있는 결정을 하지 않으려는 정치권의 복잡한 속내가 드러난 결과라는 것이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후보지 두 곳 중 어느 한 곳을 선택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동안 신공항 입지로 경남 밀양을 지지하는 대구 · 경북 · 경남과 부산 가덕도를 주장하는 부산 지역 간 갈등은 '낙동강 전투'로 불릴 정도로 치열했다. 가깝게는 4 · 27 재보선,멀게는 내년 총선 · 대선을 앞두고 정부가 어느 한 곳을 입지로 선정했을 때 탈락지에서 불지 모를 역풍은 감당하기 힘들다는 판단이다. 가뜩이나 수도권에서 민심 이반이 심각한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텃밭인 영남지역까지 송두리째 잃을 경우 정권 재창출도 힘들어진다. 때문에 청와대 측은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정치가 아닌 경제 논리에 바탕을 둔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청와대는 한편에선 백지화 발표 뒤 후폭풍에 대한 대책 마련도 고심하고 있다. 백지화에 대한 부산과 대구 · 경북지역의 반응은 약간 다르다. 부산은 가덕도가 그리 밑지는 결론이 아니라는 판단이지만 대구 · 경북 · 경남지역에선 반한나라당 정서가 심각하다. 밀양이 지역구인 조해진 의원은 "신공항 건설은 주민들의 10년 숙원사업이었다는 점에서 (백지화 결정 발표 후)내년 총선까지 반대 집회 · 시위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청와대는 공식적으로는 부인하지만 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의 핵심인 중이온가속기와 기초과학원 중 어느 하나를 떼서 대구 · 경북 지역에 분산 유치하는 방안이나 경부선 KTX의 속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운행 시간을 단축시켜 인천공항으로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공항 백지화로 가닥이 잡히면서 유력한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입장도 주목된다. 박 전 대표는 그동안 신공항이나 과학벨트 등 지역 갈등 소지가 있는 국책사업에 대해서는 언급을 최대한 자제해왔다. 29일 강릉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평창동계올림픽 유치특위 회의에 참석해서도 신공항 입지와 관련,"아직 발표가 나지 않았다"고만 언급했다. 내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한곳을 지지할 경우 역풍이 불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31일 대구를 방문해 입장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김두관 경남지사는 적극적으로 신공항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김 지사는 지난 28일 정부의 영남권 신공항 건설 백지화 움직임이 보도되자 "이 대통령이 국민과의 약속을 깨는 것"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신공항 문제가 여당의 텃밭을 분열시킬 호재로 보고,총선과 대선에 적극 활용하겠다는 속내가 엿보인다. 민주당도 "이 대통령이 '선거공약은 표를 좀 받기 위해 하는 것이지 안 지켜도 된다'고 하는 것은 밥 먹었으니 식당 문 닫으라는 것과 똑같다"며 정부를 몰아붙이는 등 신공항 문제는 향후 정국의 핵 폭풍이 될 전망이다.

박수진/홍영식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