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거래의 지급 수단은 거래 당사자들이 결정하는데 세계 어느 곳에서나 돈으로 통용되는 것이어야 지급 수단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동안 국제 기축통화로 인정받아온 미국 달러화는 세계의 모든 은행에서 현지 화폐로 환전해주는 돈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달러화는 국제거래의 지급 수단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화폐이고 각국의 국내총생산(GDP)이나 자산 규모를 측정하는 단위로 사용된다.

반면에 짐바브웨의 1조달러짜리 지폐는 달걀 1개밖에 살 수 없고 그 가치도 날로 떨어지고 있다. 짐바브웨 화폐를 원하는 사람은 그 국민과 짐바브웨를 찾아온 여행객뿐이다. 형편이 이러하니 짐바브웨 화폐가 국제거래의 지급 수단으로 통용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

국제거래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지급 수단으로는 미국 달러,유럽 유로,일본 엔,그리고 영국 파운드가 있는데 이들 화폐를 경화(hard currency)라고 한다. 시장경제권 사람들이 항상 약간의 현금을 준비해야 하듯이 세계화 시대에 각국은 경화로 이뤄진 외화를 보유하고 있어야 국제거래를 수행할 수 있다. 한 나라가 대외 지급에 사용할 수 있는 외화 및 (주로 미국의) 단기 국채 등을 합해 그 나라의 외환보유액(foreign exchange reserves)이라고 한다. 외환보유액은 보통 미국의 달러화 가치로 환산해 집계한다.

시중은행은 대외 지급 목적의 환전 수요가 있어도 환율 상승이 예상되는 시기에는 환차익을 노려서 환전 요구에 응하는 대신 오히려 외화 보유를 늘리려고 한다. 그러므로 대외 지급 능력을 나타내는 외환보유액은 중앙은행이 보유한 외화로 집계한다. 작년 말 현재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2조8000억달러로 세계 1위였고 그 뒤를 이어서 일본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 2월 말 현재 2980억달러로 세계 8위다.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외환시장에 개입함으로써 환율을 조정할 수 있다. 수출을 진흥할 목적으로 환율을 현재의 시장 환율보다 더 높게 유지하려면 시중의 외화를 사들이면 된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몰아붙이는 까닭은 중국이 의도적으로 달러화를 사들임으로써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믿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 우리나라 정부는 낮은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보유 외화를 대량 매각했다. 그러나 환율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본 시장에서 앞다퉈 외화를 매입했기 때문에 외환보유액이 일시에 소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외 지급 불이행에 따른 국가 부도 사태를 막으려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금융위기를 속칭 IMF 위기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승훈 <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