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부지법의 모 판사가 민사사건 판결에서 단 한 문장으로 판결 이유를 쓰고,변호사가 제출한 서류를 베껴 별지에 붙인 판결문을 낸 모양이다. 대여금 2900만원 반환 청구소송을 기각하면서 주문(主文) 10자,판결 이유 72자를 적어 지난해 12월21일 원고 측에 보냈다는 것이다. 우리는 판결문이 짧다는 것 자체를 시비 삼을 생각은 전혀 없다. 복잡하고 긴 문장보다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판단 과정에 대한 설명을 생략한 탓에 무엇을 근거로 판결을 내렸는지 알 수 없고 이를 접한 국민들은 필시 재판이 무성의하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게 뻔하다.

일부 법관들의 행태가 문제 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판사들이 개인적 정치 성향에 따라 들쭉날쭉 판결을 내리고 있는 것은 국민들의 신뢰 또한 크게 훼손하고 있다.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엇갈린 판결이나 강기갑 의원의 국회 폭력에 대해서는 강 의원보다 더 튀어올랐던 판결,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무죄 판결 등이 모두 그랬다. 이런 재판들은 국민의 평균적인 법적 기대치와도 거리가 멀었다. 여기에 젊은 판사들의 '막말'논란까지 겹치면서 사법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 얼마 전엔 광주지법 수석 부장판사가 친형을 감사로 선임한 사실이 드러나 현대판 원님재판이라는 비난도 쏟아졌다.

재판 결과는 언제나 중요하고 절박하다. 그러나 사법권 독립이라는 이름 아래 재판의 엄정성과 공정성을 보장할 만한 객관적 장치가 우리에겐 없다. 미국에선 각 지역 변호사단체가 판사들을 치밀하게 검증하고 일본에서도 2003년부터는 판사를 평가한다.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한다는 것이 판사 개인의 양심과 개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법적 이성이라는 보편적 양심이자 법적 안정성이라는 범위 안에서 독립적이라는 뜻이다. 법관들이 독립을 핑계로 자의적이고 무성의한 판결을 남발한다면 법의 권위는 결국 무너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