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조소프라노 가수들은 항상 푸념합니다. 왜 하녀 아니면 창녀 역만 맡기냐고요. "

삼성자산운용의 '음악이 있는 투자설명회'가 열린 29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5층 다목적홀.김용배 추계예술대 교수(57)가 객석을 향해 농담을 던졌다. 순간 500여명의 투자자가 폭소를 터뜨렸다.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대부분의 오페라에서 주역은 가장 높은 음역대를 불러 밝은 느낌을 주는 소프라노가 맡지만 유혹적이고 방탕한 팜파탈인 카르멘 역에는 중간 음역대의 메조소프라노가 제격"이라는 김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투자자들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공감을 표했다.

재치 있는 '해설 음악회'가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투자설명회'와 결합된 현장이다. 설명회에 나선 김 교수는 피아니스트 출신으로 2004년 예술의전당 사장을 지냈다. 재임 시절 매월 둘째 목요일 여는 '11시 콘서트'를 4년간 50여회 진행하며 클래식 저변을 넓혔다.

김 교수가 처음으로 투자설명회에서 음악회를 연 것은 지난해 4월이다. 두 달에 한 번꼴로 진행해 이날 7회째 공연을 마쳤다. 첫회 관객은 200여명에 불과했지만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500여명까지 늘었다. 6회 때에는 600명을 넘어 보조의자를 놓을 정도였다.

삼성자산운용 관계자는 "음악회 때문에라도 투자설명회에 참석하겠다는 사람이 늘어 인원을 제한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투자설명회 자리에서 뜬금없는 클래식 공연을 하느냐는 반응이 많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재미있다고 소문이 퍼진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음악을 들을 의향이 없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과정이 가장 어렵다고 그는 말했다. 투자설명회에 참석하는 목적이 음악보다 돈이기 때문에 일반 음악회 진행보다 더 힘들다는 얘기다. "개그맨들이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가장 웃기기 어려운 상황은 웃을 준비가 돼 있지 않는 사람들을 웃겨야 할 때라고요. 엄숙한 회의를 진행하는 사람들에게 농담을 건네고 웃기려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투자설명회도 마찬가지예요. 이 분들은 투자 정보를 들으러 온 것이지 클래식 음악을 들으러 오지는 않았으니까요. "

그는 흥미를 끌 수 있게 쉬운 곡 위주로 연주한다.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가벼운 곡에 편중되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관객을 이끄는 핵심이라고 소개했다. 김 교수는 앞으로도 비슷한 취지의 음악회를 많이 열 계획이다.

"클래식은 지루하고 어렵다는 편견을 깰 수만 있다면 어떤 자리,어떤 관객이든 상관없습니다. 음악은 위안을 주고 안식을 주고 감동을 주죠.이 즐거움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게 제 꿈입니다. "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