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옥희 회장 선출 무효·개막전 취소…총회도 무산
◆절차 무시한 협회 임원들의 무지
선 회장 사퇴 후 협회는 24일 긴급이사회를 열어 한명현 수석부회장을 회장 직무대행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한 직무대행 선출은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무효화됐다. 이어 다음날 열린 정기총회에서 구옥희 부회장을 새 회장으로 선출했으나 이번에도 정족수 미달로 '없던 일'이 돼버렸다.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서는 대의원 56명 중 28명이 참석해야 하지만 27명만 참석한 것이다. 닷새만에 회장을 두 번이나 선출하고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촌극을 벌인 셈이 됐다.
또 이날 총회에서는 부회장단(한명현 구옥희 강춘자)이 선 회장 사퇴에 따른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다. 결국 부회장단이 모두 사퇴한 상황에서 회장 직무대행을 맡은 김미회 전무가 31일 임시총회를 소집하려고 했으나 이마저 이사회에 안건을 상정하는 절차를 밟지 않아 취소됐다.
김 전무는 30일 협회 사무실에서 "이사들의 협조를 받아 정상적인 절차로 이사회와 정기총회를 열고 빠른 시일 내에 새 회장을 선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이사들은 협회 사무실로 몰려와 김 전무의 회장 직무대행을 막아야 한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고성이 오가는 험한 분위기도 연출됐다. 이사들은 김 전무에 대한 업무정지 가처분 신청까지 낼 태세다.
◆사퇴 파동에 개막전 취소까지
KLPGA 회장은 10년 이상 기업 출신 오너가 맡아왔다. 조동만 한솔 회장과 홍석규 보광휘닉스파크 회장에 이어 2009년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이 취임했다. 이전 회장들은 큰 사안에 대해서만 의견을 표명한 반면 선 회장은 '실무 회장'을 자처했다.
선 회장은 선수 위주의 협회를 운영하기 위해 상금을 늘리고 대회 직후 바로 상금을 송금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경기위원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경기위원의 정년도 70세에서 60세로 낮췄다.
이 과정에서 선 회장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했고,직접적인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한 이사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사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은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KLPGT)' 대표 선임이었다. 8개월 전 이사들은 KLPGT의 대표를 겸하고 있던 선 회장에게 공동대표를 요구했다. 선 회장은 '신속한 업무 집행'을 위해 단독대표를 두고 한명현 수석부회장을 부사장으로 선임해 전결권을 주겠다고 제안했다가 이사들의 반대에 부딪치자 사퇴의사를 밝혔다. 이사들은 사내이사 10명의 서명을 받은 동의서까지 제출하며 선 회장을 붙잡았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이사들은 '전결'에 대한 용어조차 이해를 못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잠잠하던 공동대표 선임 건은 지난 17일 이사회에서 다시 불거져 나왔다. 선 회장은 "이런 상황에서는 일을 할 수 없다"며 다시 사퇴의사를 표명했고 결국 22일 물러났다. 여기에 선 회장의 하이마트가 후원하기로 한 개막전까지 취소되면서 집안 싸움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누구를 위한 싸움인가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골프계 안팎의 시각은 싸늘하다. 과연 누구를 위한 싸움이냐는 것이다. 이사들은 협회의 개혁을 주도한 선 회장의 사퇴를 촉발한 것과 동시에 새로운 회장 선출을 방해하고 있다. 이들이 6000만원의 연봉에 유류비 지원까지 받는 부회장 자리를 다음에 누가 이어받을 것인지 순번까지 정해놨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김소영 이사(52)는 "30대에는 잘 몰라서 외부 인사들을 영입해 일을 했지만 이제는 우리도 제대로 일을 하려고 한다"며 "이사들의 의견을 모아 조만간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투어 개막을 앞두고 협회가 해야 할 일은 많다. 내달 4일과 5일 시니어투어 개막전에 앞서 TV 중계권 협상을 끝내야 한다. 선장을 잃은 협회 직원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선수들도 개막전 무산에 따른 여파를 걱정하고 있다.
1년밖에 남지 않은 회장 자리를 놓고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는 KLPGA가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갖춘 한국 여자프로골프계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