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건설 법정관리 여파

시중은행들이 앞으로 대기업 계열 건설사 등 대출에 있어 한층 깐깐한 잣대를 들이댈 것으로 보인다.

LIG건설 법정관리 여파로 금융권 안팎에서 '대기업 계열사라고 무작정 믿지 말고 대출심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장들은 최근 월례간담회에서 대기업들의 잇따른 부실 계열사 버리기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데 이어 기업금융 및 여신 담당자들도 모여 심사 강화 방안을 논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은행권은 특히 LIG건설이 지난 21일 채권단과 논의 없이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법정관리 신청 직전에는 42억원의 기업어음(CP)을 발행한 점을 문제 삼고 있다.

LIG그룹이 법정관리 신청 이후인 30일 500억원 규모의 펀드를 통해 LIG건설 주식에 투자한 금융회사들에 투자금을 대신 지급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자금 여력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도 꼬리 자르기 의혹을 키우고 있다.

국민연금 등 펀드 투자 금융회사들은 LIG건설이 상장되지 못하자 최근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풋옵션을 행사했고 LIG그룹이 투자금에 10%의 이자를 붙여 대신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대기업들에 당했다"며 "대기업들은 형제가 운영하는 계열사가 망하면 가차없이 버렸다가 나중에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을 추진해 살아나면 다시 거둬들이는 게 패턴"이라고 비난했다.

금융당국은 LIG건설 사례처럼 원래부터 모기업 계열사가 아니라, 다른 기업이었다가 모기업에 인수된 경우 계열사의 자금난을 방치하는 이른바 `꼬리 자르기'가 언제든 가능하다는 점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사정이 좋지 않은 건설사에 대해 당장 대출 회수에 나서는 것은 아니고 여신심사 역시 개별기업에 대해 독립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같은 방법으로 앉아서 당할 수 없다"는 목소리는 높다.

LIG그룹 전체에 대출을 제한해야 한다는 강경 발언도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아직 관련 기준이 없는데, 아무래도 건설사를 인수한 기업의 대주주에는 등급을 낮추는 등 조치를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도 "심사 기준을 강화하는 것은 은행들이 모여서 논의해봐야 하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한 적은 없지만, 은행들이 모여서 심사 기준 강화 등을 검토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앞으로 `꼬리 자르기'가 가능한 계열사에 해당하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여신 심사에서 낮은 점수를 주는 등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국민은행 등 은행들은 법정관리에 따라 LIG건설의 서울 중랑구 망우동 '중랑숲 리가'와 경기도 용인시 언남동 '용인구성 리가' 등 사업장에 대한 시공권 교체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8일 LIG손보 주식을 담보로 LIG그룹에 주식담보대출을 해준 신한은행과 전북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LIG그룹이 만기까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담보인 지분 700만주를 매각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금융권에선 금융회사들이 담보 지분을 매각하더라도 LIG손보의 대주주에 변동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문제가 4월부터 본격적으로 돌입하는 구조조정 시즌을 맞아 채권은행들이 부실징후기업들을 한층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계기도 될 것으로 보인다.

채권은행들은 이달 말까지 금융권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 대기업에서 2010년 기준 확정 재무제표를 제출받아 4월부터 일제히 정기 신용위험평가에 들어간다.

5~6월에는 세부평가 대상업체를 대상으로 부실징후기업에 해당하는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A(정상), B(일시적 유동성 부족), C(워크아웃), D(법정관리)로 구분하게 된다.

금융권 총 신용공여액의 0.1% 이상을 차지하는 주채무계열을 대상으로 한 재무구조 평가도 4월 초부터 시작된다.

한 채권은행 관계자는 "B등급 건설사라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일부 대출 상환 요구 등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은행들이 가뜩이나 어려운 건설사에 대한 대출을 옥죄면 연쇄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2010년 국민계정'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건설업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3.2%가 떨어져 2008년 4분기 -6.8%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한 금융계 인사는 "현재 건설사들의 수주 물량이 거의 없고 올해 4대강 사업마저 끝나면 사업할 게 없는 처지"라며 "이런 상황에서 대출심사를 강화하면 건설사들은 큰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최현석 이봉석 홍정규 기자 indigo@yna.co.krharrison@yna.co.kr anfour@yna.co.kr zhe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