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카레가 유행이다. 명동이나 홍대를 걷다 보면 일본 카레 전문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카레를 먹는 방법이다. 그들은 스푼을 이용해 두부를 자르듯 카레와 밥을 정확히 구분해서 먹는다. 음식은 비비는 순간 쓰레기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 중 하나가 비빔밥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보수적인 일본인의 관념을 무너뜨릴 정도로 맛있고 대중적인 비빔밥.언제부터 어떻게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됐을까.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음식인문학》에서 비빔밥의 뿌리를 추적한다. 주 교수에 따르면 비빔밥은 1920년대 근대 도시에 외식업이 생겨나면서 널리 퍼지게 됐다. 별다른 조리 과정을 거치지 않고 빠르게 손님 앞에 내놓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외식업체의 대표적 음식으로 자리잡았다는 것.비빔밥은 밥과 반찬을 같이 먹는 한국인의 식습관에도 잘 맞았다.

1929년에 나온 잡지 《별건곤》의 기사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다. 잡지는 비빔밥을 '값도 10전,상하계급을 물론하고 쉽게 배고픔을 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저자는 비빔밥의 양념으로 고추장이 쓰이게 된 유래도 밝혔다. 비빔밥의 고명으로 쓰이는 쇠고기 육의 비린 맛을 줄이고 살균효과를 얻는 데 고추장이 효과적이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비빔밥의 원조가 전주로 굳어진 이유가 1980년대 '향토음식' 바람 때문이라 말한다. 전두환 정부 시절 각 지역의 행정부서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을 선정했고,그것을 판매하는 '팔도미락정'이 여의도에 문을 열었다. 이때부터 전주비빔밥이 전국적인 명성을 확보하며 퍼졌다는 것.따라서 주 교수는 비빔밥을 '발명된 전통'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처럼 음식을 생산과 소비에만 집중하지 않고 철학 역사 국가정책 등 다양한 인문학과 함께 섞어낸다. 그밖에 '한국에 왜 매운음식이 발달했는가' 등의 주제도 흥미롭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