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2008 델리 오토 엑스포' 현장. 5년여 만에 완성된 세계 최저가 승용차 '타타 나노'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타타그룹의 라탄 타타 회장(74)은 이렇게 말했다.

"약속은 약속입니다. "

대당 10만루피(2500달러). 이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설정한 뒤 개발에 들어간 타타 나노는 누가 봐도 '간디식 엔지니어링(인도식 저가 혁신제품 개발)' 이상이 요구되는 프로젝트였다. 당연히 5년 동안의 개발비 상승 요인까지 발생했을 터. 그러나 완성차를 공개하기 전 가격 변경을 기다렸던 사람들의 기대는 헛된 것이었다는 게 이 한 마디로 확인됐다. 140년 전통 타타그룹의 경영철학인 '신뢰경영'의 에센스가 드러나는 말이기도 했다.

김종식 타타대우상용차 사장(56)이 《타타그룹의 신뢰경영》을 펴냈다. 자신이 타타그룹에 합류하게 된 배경과 타타대우상용차 사장으로서 일을 하며 경험하고 관찰한 타타그룹의 경영철학,최고 경영진의 경영방식 등을 담담하게 정리했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세계 기업들의 평균 수명은 15년. 대한상공회의소가 낸 '장수 기업에서 배우는 지속성장 전략'이란 보고서에 나타난 한국 기업의 평균 연령(2006년 기준)은 거래소 상장기업 32.9세,코스닥 상장기업은 16.7세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 많은 기업들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도태된다는 뜻이다. 이런 기업 환경에서 타타그룹은 어떻게 140년 역사를 지속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커뮤니케이션과 정보기술(IT) 엔지니어링 원자재 서비스 에너지 소비재 화학 등 7개 사업 부문 100여개의 계열사에서 연 674억달러(2009~2010 회계연도)의 매출을 올리는 인도 최대의 기업집단으로….

저자는 라탄 타타 회장이 말한 "약속은 약속입니다"란 한 마디에 담긴 타타그룹의 '신뢰경영' 철학에서 확실한 해답을 찾는다. 저자가 2009년 타타대우상용차 사장직 면접에서 통과된 것도 약속을 중시하는 그의 자세 덕이었다고 기억한다.

"타타자동차의 라비 칸트 부회장이 마지막으로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하더라고요. 타타자동차가 저에게 사장직을 제의해 승낙한다면 그 대답은 가슴에서 나오는 말인가,머리에서 나오는 말인가 하는 것이었죠. 대답을 하고 나서 조건을 달았어요. 예정된 대학강의를 하기 위해 취임식을 미루거나 아예 사장지원을 철회하겠다고 했어요. 근데 면접에 통과해 사장취임을 요청받은 거예요. "

역시 '신뢰'였다.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는 게 타타라는 기업의 '산스카르(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가치)'였다. 글로벌 경영 경험도 물론이지만 자리보다 미리 잡은 강의 약속을 중시하는 저자의 자세에 타타가 손을 들어준 것이란 얘기다.

타타그룹의 신뢰경영은 회사와 사회를 따로 보지 않는 '공생철학'으로도 뒷받침 된다. 타타그룹은 영국에서 독립한 인도의 복지를 일정부분 책임졌다. 지주회사인 타타손즈는 주식의 3분의 2를 기부해 자선재단을 만들어 과학과 기술,의료연구 등을 위한 국가기관을 설립했다. 타타그룹이 해마다 사회발전 부문에 지원하고 있는 금액은 전 계열사 순이익의 4%를 헤아린다. 특히 교육과 의료 부문에 지원을 집중했다. 이는 인도의 부를 끌어올리는 역사였다.

저자는 "타타그룹의 신뢰경영과 대한민국의 은근 및 끈기 DNA가 융합되면 우리 기업들이 더 높이 비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