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허,금방 휘청일 줄 알았더니 모자(母子)가 결국 회사를 일으켰네."

최근 한 제약업계 원로가 조용준 동구제약 사장(45)에게 던진 말이다. 이 원로의 얘기처럼 제약업계에서는 동구제약이 최근처럼 고속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창업자였던 경영자가 몸져 눕고 새로 경영을 맡은 사람은 가정주부였던 아내와 대학원을 갓 졸업한 아들이었다. 경영에 문외한이었던 모자가 회사를 맡고 나서 3000여개였던 거래처는 1000여개로 급감했다. 150억원이던 매출은 100억원대까지 줄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흔들리던 동구제약을 바로잡으며 다시 성장가도에 올려놓았다. 14년이 지난 지금 동구제약은 매출 820억원,영업이익 120억원대를 바라보는 우량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이 회사는 조 사장의 공격경영에 힘입어 최근 5년간 제약업계 최고 수준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조 사장은 "부친의 갑작스러운 병환과 작고로 정상적인 가업승계를 받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며 "늦은 감이 있지만 과거 동구제약의 위상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 신출내기 모자,회사를 맡다

동구제약은 유한양행에서 해외영업 등을 담당했던 조동섭 전 사장이 1970년 창업했다. 전립선 치료제인 '쎄닐톤'이 전립선 치료분야 국내 1위에 올랐고 활성형 생균정장제 '벤투룩스'가 성공을 거두는 등 전문의약품 분야에서 입지를 다져 갔다. 조 사장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당시 30위권의 중견 제약업체로 한미약품,삼진제약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1992년 조 전 사장이 메이그증후군이라는 희귀성 신경질환을 앓아 누우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공석이 된 대표는 부인인 이경옥 회장(72)이 맡았다. 가정 주부였던 이 회장에게는 벅찬 자리였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 중이던 조용준 사장도 결국 유학을 포기하고 회사에 입사,어머니를 도와야 했다. 제약업계에서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전무하던 시절.이 회장은 중앙대 최고경영자과정을 다니는 등 뒤늦게 경영학 공부에 뛰어들었고 제약업계 경영자 모임에서 얼굴 알리기에 나서는 등 각고의 노력을 펼쳤다.

하지만 5년여간 투병생활을 했던 조 전 사장이 1997년 작고했고 외환위기까지 겹치면서 사정은 악화됐다. 병원,약국 등 3000여개가 넘는 거래처는 1000여개로 줄었다. 제약업계 순위는 70위권으로 밀렸다. 조 사장은 "제약업계는 특성상 병원,약사,정부 부처 등과의 소통과 네트워크가 중요한데 아버지로부터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됐다"며 "초기에는 업계 흐름을 빠르게 읽지 못하고 의사결정이 늦어지거나 실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전 국민 의료보험 가입,의약분업 등에 따른 제약업계의 고속 성장세에 제대로 올라타지 못한 점은 지금도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주변의 우려를 불식한 급성장

두 사람이 가진 최대 무기는 부친이 쌓아놓은 신뢰,그리고 임직원들이었다. 특히 이 회장은 직원들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직원들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는 일일이 자필로 카드를 써서 보내 주었다. 자녀 중 · 고교 학비를 전액 지원하는 등 복지를 강화하고 사내 시상제도도 도입했다. 직접 가사를 써서 사가(社歌)를 만들기도 했다. 2006년에는 조 사장이 대표자리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2세 경영에 돌입했다. 이 회장이 남편의 유지인 회사를 지키고 직원들을 다독이는 데 주력했다면 조 대표는 경영의 방점을 성장에 찍었다.

그는 "회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더욱 전문화되고 특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과거부터 강점을 가지고 있던 비뇨기과와 피부과에 집중하고 이후 시장 규모가 큰 내과 영역에서 틈새를 넓혀 나가는 전략을 취했다"고 말했다. 영업과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처졌던 동구제약의 위상도 회복세로 돌아섰다. 처방약 분야에서 순위는 37위까지 올라갔다. 피부과 분야에서 3위,비뇨기과 분야에서 9위를 달리고 있다. 내과 부문에서는 고지혈증,당뇨 등 성인병 제약 시장의 급성장에 맞춰 개량신약과 복합제신약 등을 준비 중이다. 조 사장 취임 후 매출은 2005년 245억원에서 지난해 771억원으로 두배 이상 뛰었다. 올해 목표는 매출 820억원,영업이익 120억원이다.

◆"아버지라면 더 잘했을 것"

최근에는 바이오 시장 진출을 위해 토자이홀딩스와 손을 맞잡았다. 토자이홀딩스는 세포치료제 개발업체인 노바셀테크놀로지 등 바이오 관련 계열사 7곳을 거느리고 있다. 이 회장이 가지고 있던 동구제약 지분 27.9%를 토자이홀딩스에 넘기고 대신 지분 10%에 해당하는 토자이홀딩스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인수했다. 동구제약은 바이오 신약후보 물질과 관련 노하우를 확보하고 관련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대신 토자이홀딩스는 피부과 분야에 강점을 가진 동구제약 유통망과 생산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토자이홀딩스는 이번 제휴로 동구제약의 최대주주가 됐다. 물론 이 회장의 가족 지분을 합하면 여전히 70%에 육박하지만,단일 최대주주 자리까지 넘겨주면서 맺은 제휴는 조 사장의 영역확대 의지가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 대표는 "남들은 고속 성장한다고 하지만 아버지께서 살아계셔서 제약업계 고속성장의 흐름을 탔더라면 매출은 이미 2000억원을 넘었을 것"이라며 "아버지만큼 회사를 절실하게 생각하는지,나태해지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면서 열심히 뛰고 있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