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치동에 최근 문을 연 '웍앤톡' 1호점.'도보여행에 필요한 모든 용품을 담았다'는 이 매장에는 90여개 스포츠 · 아웃도어 브랜드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매장 '주인'은 LS네트웍스.하지만 이 매장에 LS의 브랜드는 프로스펙스 스케처스 몽벨 잭울프스킨 등이 전부다. 나머지 아디다스 리복 뉴발란스 미즈노 노스페이스 머렐 컬럼비아 등은 시장에서 프로스펙스나 몽벨과 맞붙는 라이벌이다. 회사 관계자는 "유통과 패션은 별개의 사업"이라며 "웍앤톡이 경쟁력 있는 유통점이 되려면 '잘 나가는' 외부 브랜드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패션업체들이 소비 트렌드에 대한 앞선 감각을 바탕으로 잇따라 '멀티 브랜드숍'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유통업체가 아닌 패션업체들이 경쟁 브랜드까지 대신 팔아주는 '적(敵)과의 동침'에 나선 것이다. 멀티숍 사업을 하려면 자사 브랜드 매출이 떨어지더라도 경쟁 브랜드를 대거 입점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LG패션과 이랜드는 연내 멀티숍을 10호점까지 늘릴 계획이며,LS도 연말까지 3개점을 추가로 낼 예정이다.

이랜드는 지난 1월 경기도 성남에 있는 뉴코아 아울렛 모란점에 스포츠 멀티숍 '스포블릭' 1호점을 냈다. 280㎡(85평) 규모의 매장에선 이랜드가 직접 운영하는 뉴발란스 엘레쎄 버그하우스 뿐만 아니라 나이키 아디다스 등도 판매하고 있다. 심지어 2008년 독일 푸마 본사가 '직접 진출하겠다'며 이랜드의 국내 사업권을 회수해갔던 푸마 제품도 들여놓았다.

이랜드 관계자는 "스포블릭의 원칙은 '고객이 원하면 어떤 브랜드라도 들여온다'는 것"이라며 "매장에 제품을 진열할 때도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를 명당자리에 올릴 뿐 이랜드 브랜드라고 우대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지난 주말 서울 장지동 가든파이브 안에 스포블릭 2호점을 냈다.

지난 30일 서울 양재동에 4호점을 낸 LG패션의 스포츠 복합매장인 '인터스포츠'도 마찬가지다. LG의 아웃도어 브랜드인 라푸마 바로 옆에 컬럼비아 아크테릭스 머렐 맥킨리 등이 놓여 있다. LG패션 관계자는 "고객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준다는 인터스포츠의 설립 취지에 맞게 앞으로도 고객이 원하는 브랜드가 있다면 '내 것,네 것' 가리지 않고 들여놓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강제화가 운영하는 신발 전문점 '레스모아' 48개 점포에선 랜드로바 팀버랜드 스프리스 등 금강 브랜드들이 나이키 아디다스 디젤 폴로 락포트 등 해외 유명 브랜드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업계에선 앞으로 이런 트렌드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멀티숍이 스포츠 · 아웃도어 업계의 새로운 유통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다른 패션업체들도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선 전체 신발 매출의 40~50%가 멀티숍에서 나오지만 국내에선 이 비중이 10~15%에 불과하다"며 "멀티숍의 성장성을 눈여겨보는 패션업체가 많아 패션업계에서도 '남의 제품 팔아주기' 현상이 갈수록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