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말 결산법인의 감사보고서 제출이 마무리되면서 증권시장에 퇴출 쓰나미가 거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자본잠식이나 감사의견 거절 등으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12월 결산법인은 모두 22개이다. 27일 현재까지 감사보고서를 내지 못한 상장사까지 합하면 올해 퇴출대상 기업이 30개를 넘으리란 예상이 많다. 며칠 전 감사의견 거절을 통보받은 한 상장사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마저 터져 분위기를 더욱 짓누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모든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국제회계기준(IFRS)을 전면 도입했다. IFRS는 원칙중심의 회계기준이다. 이에 따라 과거 규정중심의 회계처리에 익숙한 기업들이 IFRS 도입에 적응하지 못하고 회계감사에서 의견거절을 받아 퇴출되거나 이를 모면하기 위해 회계분식이 이뤄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국가경쟁력의 한 요인인 기업 회계투명성이 오히려 낮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회계학회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회계 불투명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코리아 디스카운트)이 2008년 국내 증시 기준으로 38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에는 무려 55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같이 낮은 회계투명성은 국가경쟁력의 약화 요인이며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우리나라가 IFRS를 도입했지만 그것이 곧 회계투명성 확보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IFRS 도입의 긍정적인 효과는 도입 국가들이 IFRS를 수용할 수 있는 법률 제도,낮은 부패수준,건전한 기업지배구조,양질의 회계정보 공시 시스템 등 사회 인프라를 잘 갖추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원칙중심의 회계기준 아래에서 회계전문가에게 요구되는 핵심역량은 전문가로서의 판단력과 도덕성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회계교육은 복잡한 사안의 본질을 명확히 파악해 높은 품질의 전문적 판단력을 함양하는 교육보다 규정 중심의 회계기준 하에서 규정을 잘 해석하고 적용할 줄 아는 기술적 역량을 배양하는 데 초점을 두어 왔다.

따라서 IFRS 도입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기술적 전문가보다 올바른 판단과 분석을 통해 고품질의 회계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글로벌 수준의 회계전문가 양성이 시급한 때이다.

IFRS를 전면적으로 수용하기로 결정한 2007년 이후 회계학계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수용할 수 있는 회계전문가의 양성을 위해 회계교육제도 개혁안을 제시하고 많은 토론을 해왔다. 특히 기업내 회계전문인력 양성이 가장 시급함을 인지하고 이를 위해 회계전문대학원 설립을 제안한 바 있다.

회계전문대학원을 설립하는 방안은 법학전문대학원 혹은 경영전문대학원과 같이 2년제 전문대학원을 설립해 사례중심교육,직업윤리교육,전문가로서의 판단력을 키울 수 있는 전문영역 교육을 시키자는 것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18개의 회계전문대학원이 설립돼 운용되고 있고,중국에서는 국가회계원이 설립돼 회계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싱가포르,미국과 세계회계사연맹(IFAC)에서도 글로벌 환경 변화를 반영한 회계전문직 교육 개혁안을 내놓고 있다.

회계전문대학원의 설립은 이제 연구와 토론을 넘어 실행에 옮겨야 할 때다. 문제는 이를 대학 차원에서 실현시키는 데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더 늦기 전에 정부가 적극 나서서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아시아권에서 최초로 도입한 IFRS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고,고질적인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장지인 < 중앙대 경영경제계열 부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