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계획 백지화와 관련,"지금 경제성이 없더라도 동남권 신공항은 필요한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해 파장을 낳고 있다. 그는 "국민과의 약속을 어겨 유감스럽다"며 "(신공항 건설은) 제 입장에서도 계속 추진할 일"이라고도 밝혔다. 영남권 민심이 격앙된 가운데 유력 대권후보가 동남권 신공항을 대선 공약에 넣겠다는 생각을 내비친 것이다.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선 신공항 백지화 방침의 유효기간이 2년이란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박 전 대표는 세종시 논란 때도 "국민과의 약속이기에 원안대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터라 이번 발언이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또 역대 대통령들이 당선에만 목을 매 타당성 · 경제성에 대한 고민없이 공약을 쏟아냈다 집권 후 뒤집는 후진적 정치관행도 이젠 근절돼야 하겠다. 하지만 수백가지 공약을 무조건 다 지키라는 교조주의적 발상은 약속을 뒤집는 공약(空約) 못지않게 큰 폐해를 낳을 우려가 있다.

국익은 뒷전인 채 지역개발 공약을 매표(買票)의 수단으로 악용해온 사례가 적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갈등에 편승해 충청권 행정도시 이전공약을 내걸어 "선거에서 재미 좀 봤다"고 본인 입으로 말했다. 우후죽순 추진된 혁신도시와 기업도시에는 오겠다는 기업이 별로 없고,과학비즈니스벨트는 오락가락하다 산으로 갈 판이다. 광역시도마다 들어선 지방공항은 돈 먹는 하마가 됐다. 설상가상으로 신공항 백지화 무마용으로 여권 일각에서 과학비즈니스벨트를 쪼개 영남권에 분산 배치하자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신용카드 돌려막기만도 못한 공약 돌려막기에 다름 아니다.

매표를 위한 지역개발 공약은 국민들을 지역균형발전이란 마약에 취하게 만들었다. 사업 비용이 편익을 초과해도 중앙정부가 메워주면 된다는 식의 억지논리가 득세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비용을 지자체가 분담케 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만하다. 아울러 공약의 실현성이 없으면 빨리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게 순리다. 뒷일이야 어찌 됐건 선거에서 재미 좀 보겠다는 후보들을 솎아내는 것은 국민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