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기업들이 '여성 임원 할당제'를 자발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1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독일 3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최근 정부 관계자들과 회의를 열고 노 · 사 동수로 구성되는 경영감독위원회와 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을 높이기 위해 여성 임원 할당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기업들은 연말까지 자체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달 "독일 대기업의 고위직 여성 비율이 세계 최하 수준"이라며 대기업 CEO들을 소환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지 한 달 만에 나온 조치다.

독일은 2001년 여성 임원 할당제를 도입했으나 법적 구속력이 없어 유명무실한 제도란 비판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독일 야당인 녹색당은 지난해 말부터 여성 임원 할당제를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녹색당은 이사회와 경영감독위원회 구성원의 40% 이상을 여성으로 채워야 한다는 내용의 법률 제정안을 내놓은 바 있다. 그동안 기업들은 강제적으로 여성 임원 비율을 정하는 것에 반대해왔다. 독일 상공회의소를 비롯한 재계는 여성 임원 할당제가 지나친 규제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번에 기업들이 태도를 바꾼 것은 법안이 통과돼 더 큰 규제를 받는 것보다 자체적으로 할당 비율을 정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독일 기업들의 여성 임원 비율은 유럽 내에서 낮은 편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독일 30대 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은 2.2%에 불과하다. 영국 스웨덴 등은 이 비율이 모두 10%가 넘는다. 독일 여성은 1977년까지도 남편의 허락 없이 직장을 가질 수 없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