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미국계 신용평가사들이 유럽 시장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독일 경제일간 한델스블라트)

유럽연합(EU)이 S&P 등 3대 국제신용평가사가 과점하고 있는 신용평가 시장에 대한 본격적인 규제에 나섰다. 유럽 경제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미국계 신평사들이 유럽 재정위기를 사전 경고하기는커녕 오히려 위기를 심화시켰다고 판단,아예 유럽 시장에서 이들을 퇴출시키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들 3대 신평사는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 변방국에 대한 평가 업무를 중단해 투자 대상 목록에서 삭제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으며 정면 충돌 조짐을 보이고 있다.

◆EU 자체 신평사 육성 모색

독일 경제일간 한델스블라트는 지난달 31일 "EU집행위원회가 미국이나 제3국 신평사가 유럽 은행과 기업들을 평가하고 등급을 매기는 것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한델스블라트는 "EU집행위가 올초 출범한 유럽증권시장청(ESMA)과 신평사 감독 · 검사권에 대한 세부사항을 논의하고 있다"며 "미국계 신평사들의 평가 기준보다 훨씬 엄격하고 투명한 유럽 자체 평가 기준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U집행위가 검토 중인 신평사 규제안에 따르면 오는 6월7일 이후엔 유럽 외 제3국 신평사가 EU가 정한 평가 기준을 적용할 때만 평가 결과를 인정할 방침이다. 미국과 유럽의 신용평가 업무 관련 법체계가 판이하게 다른 만큼 사실상 미국계 신평사들에 대한 퇴출 조치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EU는 유럽중앙은행(ECB)의 리서치 조직에서 10~20명을 차출,무디스 등을 대체할 신평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유럽 국가나 기업에 대해 부적절하게 평가한 신평사에 법적 책임을 묻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EU가 국제신평사들과 각을 세우는 것은 유럽 재정위기에 신평사들이 기름을 붓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디스 등은 최근 포르투갈과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을 잇따라 강등하며 유럽 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키웠다. S&P는 1일 아일랜드의 신용등급도 강등했다. 이에 대해 EU 각국은 "EU의 운명이 신평사들의 신용등급 부여 결과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앞서 에발트 노보트니 오스트리아 중앙은행 총재는 "뉴욕에 앉아 있는 3명의 신평사 직원이 유럽 각국 중앙은행보다 EU 각국의 상황을 더 잘 안다고 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고,BBC방송은 "막강한 권한을 지닌 신평사들에 대한 신용평가는 막상 신평사 자율에 맡겨져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신평사 "유럽 금융사만 손해"

이에 대해 국제신평사들은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 국가에 대한 신용평가 업무를 중단하겠다"는 경고로 맞섰다. 재정위기에 시달리는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에 대한 평가 업무를 전면 중단할 경우 이들 국가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금 유입이 끊길 수도 있다는 '압박'을 하고 나선 것이다. 신평사 관계자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국제신평사들이 유럽 변방국에 대한 평가 업무를 중단하면 이들 변방국은 글로벌 투자지도에서 사라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국제신평사들은 "유럽에서 업무를 계속하고자 한다면 (본사를) 유럽으로 이전하라"는 EU의 요구에도 반발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신평사들이 그리스를 이집트보다 불안한 나라로 만든 이후 EU와 신평사 간 간극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