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에서 100억~200억원 해먹은 주가조작 사범들을 검거하면 '헤지펀드 같이 큰 범죄는 놔두고 왜 우리 같은 피라미만 잡냐'고 따집니다. 시장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세력은 따로 있다는 거죠."(대검찰청 고위 간부)

검찰이 파생상품을 중심으로 한 금융시장의 구조적 비리에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최근 진행하고 있는 주식워런트증권(ELW) 부정거래와 국 · 내외 증권사의 주식연계증권(ELS) 시세조종,'11 · 11 옵션쇼크' 시세조종 수사는 검찰 역사상 전례를 찾기 힘든 수사들이다. '위법이냐 아니냐' 논란도 없지 않지만 금융범죄에 대한 검찰의 수사 의지는 강하다.

◆신종 금융상품시장에 칼날

검찰의 금융수사는 수뇌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대검의 한 간부는 "김준규 검찰총장이 금융비리 수사를 누누이 강조해 당분간 검찰 수사는 이쪽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취임한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은 특히 헤지펀드와 이들이 주로 투자하는 파생상품 분야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

최근에는 금융조세조사 1 · 2 · 3부 검사들에게 미국 헤지펀드 업계의 실상을 다룬 책 '투자전쟁'을 반드시 읽으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금융수사 등과 관련해 "1년에 '벤츠' 같은 작품 2개만 만들라"고 주문했다. 그렇고 그런 코스닥 주가조작 사범을 여럿 잡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거대한 파생상품 시장에서 복잡한 금융기법 뒤에 은폐됐던 헤지펀드나 금융회사,상장사들의 큰 부정부패를 잡으라는 주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선물,옵션 등 주요 파생상품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2009년 42조8107억원에서 지난해 56조6190억원으로 31.8% 증가했다. 총 거래대금은 지난해 기준 1경4161조원으로 유가증권시장 주식 거래대금(1410조원)의 10배를 넘었다.

검찰은 파생상품과 관련한 금융감독기관의 내부 비리까지 들여다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서울남부지검은 지난달 상장사로부터 유상증자 청탁 명목으로 총 7억원을 챙긴 혐의로 전 금융감독원 직원을 구속하고 서울중앙지검은 상장폐지 심사 과정에서 상장사로부터 금품을 받은 한국거래소 심사위원들을 불구속 기소하기도 했다. 검찰은 "자료 확보 차원"이라지만 지난달 ELW 수사와 관련해 한국거래소를 압수수색해 파생상품 수사가 상장폐지 비리와 같이 '윗선'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관측된다.

◆'위법이냐 아니냐' 법리 논란 커질 듯

검찰이 새로운 범죄유형을 파헤치는 만큼 유 · 무죄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국내외 증권사 4곳의 ELS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해 상당수 혐의자들을 기소하는 내용의 수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증권사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내용의 자료를 추가로 제출해 이를 검토 중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검찰이 적용하는 법리에 문제가 없는지 거듭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달 중소기업에 대한 은행의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 사기계약에 대한 수사결과도 발표하려다 중소기업과 은행 양쪽에서 추가 자료를 내 미뤄졌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1월 키코 수사와 관련해 중소기업 측 변호인단과 은행 측 변호인단을 참석시킨 가운데 법리설명회까지 열었다.

키코는 검찰 내부에서도 유 · 무죄 논란이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LW 수사도 스캘퍼(초단타 매매자)들의 증권사 전용회선 사용 등이 부정거래(자본시장법 178조1항 위반)에 해당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검찰은 금융수사 전문인력을 확충하고 교육을 강화해 법리를 갈고 닦을 계획이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는 매달 금융범죄실무연구회 세미나를 열어 파생상품 분야 연구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석환 금융조세조사1부장은 "이달에는 '투자전쟁'과 관련한 세미나를 열어 헤지펀드 업계의 파생상품 투자에 대해 깊게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임도원/이고운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