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저 수준으로 유지되던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인상되어 변동금리 대출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매월 상환하는 이자부담이 늘어나 이전보다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기 때문이다. 대출기간 연장이 끝나고 원금상환 기일이 가까워진 대출자에게 금리인상이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진다. 변동금리 대출을 받은 경우 금리상승에 따른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됨으로써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대출을 통해 내 집을 마련하는 경우 통상 수년간 연봉에 해당하는 거액을 대출받아야 하는 만큼 개인의 상환능력과 향후 가계의 자금계획,대출상품의 상환기간 · 상환방식 · 금리조건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하지만 고객이 실제로 대출상품을 선택할 때는 금리변동에 따른 위험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대출 이후의 금융시장 상황에 따라 늘어난 대출이자와 상환부담으로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본격적인 금리인상에 대비하여 장기 · 고정금리 상품의 이용을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주택담보대출 92%는 '변동금리'

우리나라에서는 전체 가계대출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380조 원의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92.5%가 변동금리 대출이다. 반면 주요 선진국의 경우에는 변동금리 대출의 비중이 한국보다 훨씬 낮다. 금융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변동금리 대출 비중은 미국 26%,프랑스 30%,영국 28%,일본 20% 수준으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고정금리 대출이 보편화돼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의 고정금리 대출 비중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국내에서는 금리 변동 위험의 거의 대부분이 대출자에게 전가되는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다. 그동안 지속된 집값 상승에 따른 투기적 수요의 증가와 함께 금융기관이 단기로 대출재원을 조달하여 운용하는 관행이 합쳐져 나타난 결과로 분석된다.

지난 30일 발간된 일본 노무라증권 보고서는 "한국 가계부채 대부분이 변동금리를 적용받고 있고 만기 일시상환 비율이 높아 금리가 오르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금리 상승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장기 · 고정금리 · 원리금 분할상환 대출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고정금리 보금자리론

정부는 단기 · 변동금리 위주의 대출 관행을 개선하고 장기 · 고정금리 대출의 활성화를 위해 2004년 4월 한국주택금융공사(HF공사)를 설립했다. HF공사는 주택금융의 장기화 · 안정화를 위해 장기 · 고정금리 · 원리금 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인 '보금자리론'을 2004년부터 공급하고 있다. 지난 3월말까지 총 34만6000여 가구에 30조4000억원의 보금자리론을 공급했다.

'보금자리론'은 고정금리를 기본으로 설계된 상품이다. 금리가 상승하더라도 신청시점에 확정된 금리대로 짜여진 스케줄에 따라 원리금을 갚아 나가면 된다. 금리변동에 따른 부담이 없어 가계자금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특히 보금자리론 고정금리는 연5%초반으로 시중은행의 변동금리 대출금리가 연4% 중반~연6%초반과 큰 차이가 없다. 대출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최근에는 고정금리 상품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해 이용자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은행권의 변동금리식 주택담보대출과 보금자리론의 금리 차이는 최근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작년 6월을 기준으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의 금리(연4.62%)와 보금자리론(연5.3%)의 차이는 0.68%포인트였지만 12월에는 이 차이가 0.53%포인트,지난 1월에는 0.40%포인트로 감소했다. 지난 2월에는 0.34%포인트였다.

◆내게 적합한 방식 골라야

보금자리론은 금리적용과 상환방식에 따라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최초 대출일로부터 만기까지 동일한 금리가 적용되는 '기본형'은 최장 3년 거치기간 동안에는 원금상환 없이 이자만 납부할 수 있다. 또 최장 3년간 고정금리로 낮은 이자를 납부하다가 '기본형'으로 전환되는 '혼합형'은 저렴한 금리와 고정금리의 혜택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구조다.

1년이내의 거치기간 동안 변동금리가 적용되다가 고정금리로 전환이 가능한 '설계형'은 금리인상이 예상되는 시점에 고객 판단에 따라 고정금리로 갈아 탈 수 있도록 선택권이 부여된다.

부부합산 연소득이 2500만원 이하인 세대에 대해 공급하는 '우대형'은 정부가 이자를 보전해주기 때문에 연소득에 따라 0.5~1%포인트 가량 금리가 낮아 저소득층의 상환부담을 줄여 준다.

같은 상품이더라도 신청 방법에 따라 금리 차이가 날 수 있다. 작년 6월 출시된 'u-보금자리론'은 인터넷이나 전화 등으로 상담하고 대출을 받는 것이 특징이다. 심사와 채권관리는 공사에서,대출은 은행에서 이뤄진다. 은행창구에서 상담이 이뤄지는 't-보금자리론'이나 인터넷 신청 후 심사 · 대출 · 채권관리를 은행에서 하는 'e-보금자리론'보다 평균 0.4%포인트 가량 금리가 낮다.

◆고정금리 시장 경쟁 예상

지난달 22일 정부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다시 부활하는 내용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고정금리 · 비거치식 · 분할상환 대출을 선택할 경우 DTI 한도를 각각 5%포인트씩 높여준다고 발표했다.

그간 시중은행들의 고정금리 대출은 최대 5년 가량으로 길지 않았다. 은행들도 장기 고정금리 대출은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판매에 나서지 않았다. 간혹 고정금리 대출이 있더라도 3년마다 금리가 바뀌는 등 사실상 변동금리 대출이거나,지나치게 금리가 높아 수요가 없었다. 이런 탓에 주택금융공사의 상품을 이용하지 않는 한 DTI 한도 상향 적용을 받는 것도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 방안으로 앞으로는 금융권에서 다양한 장기 고정금리 상품이 잇달아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쟁이 이뤄지면 소비자들에게는 좀 더 좋은 조건의 다양한 고정금리 상품이 등장할 수 있다.

아울러 금융감독 당국도 고정금리 대출을 대폭 늘리기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예정이다. 예컨대 변동금리와 고정금리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소득세 공제 혜택을 이원화해 장기 고정금리 대출을 유도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정부는 15년 이상 장기 대출에 대해 고정금리,변동금리 여부와 상관없이 연간 1000만원까지 이자 상환액을 소득공제하고 있다.

코픽스(COFIX · 자금조달비용지수) 연동형 대출 중에서도 장기이고 잔액 기준인 코픽스 대출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정부 내에서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3개월 ·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보다는 12개월 · 잔액 기준 코픽스 연동대출을 유도하는 등이다. 주택을 '장기적 · 안정적 거주수단'으로 전환하려면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인식 변화가 앞서야 한다는 점에서 이같은 움직임은 고무적이다.

이규진 주택금융공사 유동화기획부 팀장 leekj@hf.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