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야 미래 투자계획을 제대로 세울 수 있겠습니까. "(10대 그룹 임원 A씨) "수도권 규제 완화가 포퓰리즘에 사로잡힌 정치권 갈등 때문에 발목이 잡히면 기업들로선 투자계획을 보류할 수밖에요. 수도권 규제를 그대로 둔다고 지방 투자가 활성화되는 것도 아닌데…."(임상혁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

동남권 신공항 건설 백지화에 반발한 비수도권 여 · 야 국회의원들이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을 저지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기업들의 신성장 투자 계획 마련에 빨간불이 커졌다.

◆커진 불확실성…기업들 한숨만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첨단업종에 한해 수도권 투자를 완화하는 쪽으로 정책을 펴면서 장기적인 투자 방안 등을 검토했었는데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당분간은 검토 자체를 보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가닥이 잡힌 정책조차 정치권에서 지역 표심에 휘둘려 뒤집기 시작하면 기업들은 누굴 믿고 중장기 경영계획을 세우겠느냐"고 푸념했다.

정부에 따르면 수도권 투자 규제 완화에 맞춰 KCC와 현대모비스,프렉스코리아 등이 수도권 공장 증설을 추진해 온 것으로 파악됐으나 비수도권 국회의원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이들 기업은 잔뜩 웅크리고 있다. 정치권 다툼에 자칫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식경제부가 파악한 바로는 하이닉스반도체와 진로 등 92개 기업이 수도권 자연보전구역의 공장을 증설할 필요가 있지만 이들 기업도 지금 상태로는 세부 계획을 확정하기 어렵게 됐다. 경기도 관계자는 "당장 공장 증설에 차질을 빚는 사례는 없겠지만 중장기적으론 기업 투자에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제와서 뒤집으면 어떡하라고"

전경련은 최근 조사에서 수도권에 대한 입지 규제가 완화되면 15조원가량의 추가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분석했다. 또 수도권 규제 완화가 정부 계획대로 진행되면 2012~2015년 대기업의 투자가 1조5000억원 정도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전경련 관계자는 "수도권 규제 완화는 작년부터 나온 얘기로 시행령이 개정됐고 이에 맞춰 기업들이 움직여 왔다"며 "정치권에서 뒤늦게 첨단업종을 새로 지정한 시행규칙 시행을 막겠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앞서 첨단업종에 한해 대기업 등의 수도권 내 공장 신 · 증설을 대폭 완화하는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산집법) 시행령을 개정했고 이번에 시행규칙을 고쳐 첨단업종 분류를 새로 할 계획이었다. 첨단업종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용 센서 등 자동차용 전기장치 제조업,나노여과막 등 액체여과기 제조업을 비롯한 8개 업종이 새로 추가됐다.

그러나 비수도권 의원들의 반발로 시행규칙 개정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시행령 따로,시행규칙 따로의 파행적인 규제 완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임상혁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정치권에서 전혀 관련이 없는 수도권 규제 완화와 동남권 신공항을 연결시켜 포퓰리즘을 노리고 있다"며 "이래서는 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산집법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을 말한다. 산업의 집적 활성화와 공장의 원활한 설립을 지원함으로써 산업입지 및 산업단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제정됐다. 원칙적으로 수도권 내 500㎡ 이상 공장의 신 · 증설 등을 제한하지만 시행규칙에서 정한 첨단업종은 일정 범위 안에서 규제 적용을 배제한다. 첨단업종은 보통 3년에 한 번씩 조정된다.

김수언/이태명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