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주들이 정책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정유업계가 정부의 담합 관련 과징금 부과 결정에 앞서 선제적으로 기름값을 내리기로 결정했지만 고유가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정유사들의 유가 인상은 필연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오는 7일부터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ℓ당 100원씩 내린다. 다른 정유사인 GS칼텍스와 S-Oil도 이런 방침에 동조해 기름값을 인하할 것으로 전해졌다.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는 "고유가로 인해 물가 상승에 대한 서민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면서 "정부의 물가 안정화 정책에 협력하고자 기름값 인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S-Oil은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고 있으나 현재 관련 내용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SK이노베이션의 기름값 인하 결정은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결정을 앞두고 시행된 일종의 액션이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내수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SK이노베이션이 갑자기 기름값 인하 카드를 들고 나온 점을 봐도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담합에 따른 부담금 규모가 가장 클 것으로 보이는 SK이노베이션이 기름값 인하를 결정해 정부 정책에 협조하는 모양새를 갖췄다는 것이다.

하지만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고유가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 정유사들을 계속해서 압박하게 되면 정책리스크가 정유업종의 아킬레스건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내수 기름 가격은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 오를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정부가 정유업체들에 소명 기회를 주는 등 과징금 발표 날짜를 미루고 시간을 벌어준 이유는 결국 정유사에 소명의 기회를 준 것이 아니라 성의 표시(기름값 인하)를 강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제훈 동부증권 애널리스트는 "정부와 기업의 사전 조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가격 인하 발표 시점이 휴일임에도 정부가 몇 시간 내에 즉각적으로 환영 메시지를 보낸 점을 봐도 그렇다"고 판단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지난 3일 SK에너지의 기름값 인하 소식에 대해 "가격 인하 결정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기업체에 과징금을 부과해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은 없다"면서 "오히려 기름값 인하를 유도해 물가 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공정관리위원회는 정유사들의 답합과 관련해 관련매출액의 범위, 위반행위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5월 개최 예정인 전원회의에서 과징금 규모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경닷컴 최성남 기자 sul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