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경제 모범국 일본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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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사고로 '매뉴얼' 문제점 노출
독도 영유권 주장 뻔뻔함 드러내
독도 영유권 주장 뻔뻔함 드러내
대재앙 때문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서,그것도 내놓고 일본을 돕자는 국민운동이 벌어진 것은 역사의 반전이다. 근대 이후 한국이 일본을 도운 일은,그럴 여력도 없었지만,거의 없었다. 우리는 일본에 당하지 않으면 손을 벌리는 처지가 아니었나 싶다. 선진국 반열에 오르려 안간힘을 쓰는 우리에 비해 일본은 성숙한 안정사회를 지향하며 멀찍이 앞서 나가고 있었다. 뒤처져 바라만 보던 한국이 돌연 그런 모범선진국 일본을 돕는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일본인이 보여준 침착함과 시민의식은 '인류정신의 진화'라는 외신의 찬사와 함께 한국민에게도 찬탄과 존경심을 자아냈다. '메이와쿠(迷惑 · 남에게 폐를 끼침)'를 싫어하는 일본인의 행동양식도 부러움과 외경을 샀다. 일본 대사가 주요 언론사를 찾아 공손하게 감사를 표하는 광경을 보며,그런 선진국을 우리가 돕겠다고 나섰다니 놀랍고 자못 대견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찬가'는 오래가지 못했다. 특히 두 가지 일로 갑자기 장면이 바뀌었다. '아름다운 피재자(被災者)'에서 '문제적 일본'으로. 하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특히 그 수습과정에서 드러난 원전 선진국 일본의 실망스러운 모습 때문이었다. 원자로 보전에 집착한 나머지 초기 대응에 실패했고 도쿄전력의 관리시스템과 원전사고 매뉴얼의 부실,미온적 정보공개 등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정부의 리더십 문제,매뉴얼 없인 요지부동인 행정의 경직성을 비롯해 자존심 등으로 인한 구호 작업과 구호물자 공급의 차질 등 일본의 고질병도 불거졌다. 최근 총리 보좌관이 방사성 물질 누출을 수개월 내에 차단하겠다고 밝힌 것과 상관없이 고농도 방사성 오염수가 해수에 유출되기 시작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니 일본이라는 나라는 원전사고와 수습의 잘못으로 이웃나라와 세계에 메이와쿠를 끼친다는 눈총을 받는다.
또 하나는 일본 정부가 대재앙의 와중에서도 다시 독도영유권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독도영유권 주장을 담은 교과서들을 검정 통과시키는 것도 모자라 외교청서를 통해 이를 공식화하고 급기야 신임 외상의 입을 빌려 독도 공격을 일본에 대한 공격으로 취급하겠다는 발언조차 서슴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돕기 성금이 격감했다는 소식이다. 대가를 바라고 돕는 거라면 필요 없다는 자칭 지한파 언론인의 비아냥거림도 나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일본의 이런 행세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재앙을 당했고 또 이웃나라 한국의 도움을 받았다고 독도영유권 주장을 포기하거나 유예할 나라가 아니다. 일본의 속마음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속죄보다는 패전의 회한,패전했지만 한국에 패한 게 아니니 영토 주장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뭉쳐 있다.
하지만 일본의 후안무치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음에도 우리 외교통상부에서 두 가지 문제를 별개로 다루기로 한 것은 온당한 일이었다. 나라의 길은 항시 공명정대하고 의연해야 하므로 일본을 돕겠다던 초심을 가다듬어야 한다. 군국주의로 내달아 전 인류에 엄청난 '메이와쿠'를 끼친 일본이 대재앙을 겪고 이웃나라와 우방국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갑자기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원전사고는 향후 수십 년 방사성 재해의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도 타격을 입었다. 모범생에서 문제학생처럼 돼 버린 일본이 이웃나라,특히 일본과 직 · 간접으로 거래를 해 온 기업들에 끼친 폐를 메이와쿠로 인식할지,그 폐를 또 어떻게 갚을지 의문이다. 우리도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전쟁,사고 등으로 이웃에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술적 요인뿐만 아니라 인간적 실수 같은 위험요소들을 차분하고도 철저히 점검,분석하고 위기관리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일본인이 보여준 침착함과 시민의식은 '인류정신의 진화'라는 외신의 찬사와 함께 한국민에게도 찬탄과 존경심을 자아냈다. '메이와쿠(迷惑 · 남에게 폐를 끼침)'를 싫어하는 일본인의 행동양식도 부러움과 외경을 샀다. 일본 대사가 주요 언론사를 찾아 공손하게 감사를 표하는 광경을 보며,그런 선진국을 우리가 돕겠다고 나섰다니 놀랍고 자못 대견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찬가'는 오래가지 못했다. 특히 두 가지 일로 갑자기 장면이 바뀌었다. '아름다운 피재자(被災者)'에서 '문제적 일본'으로. 하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특히 그 수습과정에서 드러난 원전 선진국 일본의 실망스러운 모습 때문이었다. 원자로 보전에 집착한 나머지 초기 대응에 실패했고 도쿄전력의 관리시스템과 원전사고 매뉴얼의 부실,미온적 정보공개 등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정부의 리더십 문제,매뉴얼 없인 요지부동인 행정의 경직성을 비롯해 자존심 등으로 인한 구호 작업과 구호물자 공급의 차질 등 일본의 고질병도 불거졌다. 최근 총리 보좌관이 방사성 물질 누출을 수개월 내에 차단하겠다고 밝힌 것과 상관없이 고농도 방사성 오염수가 해수에 유출되기 시작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니 일본이라는 나라는 원전사고와 수습의 잘못으로 이웃나라와 세계에 메이와쿠를 끼친다는 눈총을 받는다.
또 하나는 일본 정부가 대재앙의 와중에서도 다시 독도영유권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독도영유권 주장을 담은 교과서들을 검정 통과시키는 것도 모자라 외교청서를 통해 이를 공식화하고 급기야 신임 외상의 입을 빌려 독도 공격을 일본에 대한 공격으로 취급하겠다는 발언조차 서슴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돕기 성금이 격감했다는 소식이다. 대가를 바라고 돕는 거라면 필요 없다는 자칭 지한파 언론인의 비아냥거림도 나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일본의 이런 행세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재앙을 당했고 또 이웃나라 한국의 도움을 받았다고 독도영유권 주장을 포기하거나 유예할 나라가 아니다. 일본의 속마음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속죄보다는 패전의 회한,패전했지만 한국에 패한 게 아니니 영토 주장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뭉쳐 있다.
하지만 일본의 후안무치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음에도 우리 외교통상부에서 두 가지 문제를 별개로 다루기로 한 것은 온당한 일이었다. 나라의 길은 항시 공명정대하고 의연해야 하므로 일본을 돕겠다던 초심을 가다듬어야 한다. 군국주의로 내달아 전 인류에 엄청난 '메이와쿠'를 끼친 일본이 대재앙을 겪고 이웃나라와 우방국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갑자기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원전사고는 향후 수십 년 방사성 재해의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도 타격을 입었다. 모범생에서 문제학생처럼 돼 버린 일본이 이웃나라,특히 일본과 직 · 간접으로 거래를 해 온 기업들에 끼친 폐를 메이와쿠로 인식할지,그 폐를 또 어떻게 갚을지 의문이다. 우리도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전쟁,사고 등으로 이웃에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술적 요인뿐만 아니라 인간적 실수 같은 위험요소들을 차분하고도 철저히 점검,분석하고 위기관리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