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이 무너졌다. " 누군가 소리치며 거리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부근을 지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따라 뛰었다. "동쪽으로 피해라." 순식간에 공포가 확산되며 달리는 사람 숫자가 점점 불어났다. 나중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2000여명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무작정 피하고 보자는 심리가 이성적 판단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민병대가 확성기에 대고 댐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반복 방송한 끝에야 가까스로 공포가 가라앉았다.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시에서 1913년 3월12일 낮 12시부터 2시간 동안 벌어진 실화다.

군중이 공포심리에 휩싸일 때는 이성이 마비되기 쉽다. 냉철한 판단 대신 남들과 같은 행동을 해야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집단행동은 대형 참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2005년 8월31일 이슬람 시아파 순례객들이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티그리스강의 알아이마 다리를 건널 때의 일이다. 누군가 "다리 위에 자폭 테러범이 있다"고 외쳤다. 겁에 질린 순례객들이 도망가려고 서로 밀치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다리 난간이 무너지면서 강에 빠져 익사하거나 밀려 넘어져 압사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무려 1200여명의 사상자가 생겼다. 실제로는 테러범도,폭탄도 발견되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의 국내 유입에 대한 공포가 일부 인터넷 매체와 방송의 선동 보도를 타고 계속 번지고 있다. 전국 71개소에 개설된 국가환경방사선 자동감시망(iernet.kins.re.kr)에서 측정되는 수치를 실시간으로 공개해도 소용 없는 모양이다. 미역 소금 다시마 등의 판매량이 2배 가까이 늘었고 방사능 방지 비옷과 필터,비누,공기청정기 등을 팔아 한몫 잡으려는 공포마케팅도 등장했다. 일각에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렀던 광우병 사태의 재연을 우려한다.

미국 오리건대 심리학과 폴 슬로빅 교수가 '위험의 인식'을 연구하며 '가장 위험한 기술과 행위가 무엇인가'를 물었더니 일반인들은 원자력을 첫째로 꼽았다고 한다. 다음은 자동차 권총 흡연 순이었다. 반면 전문가들은 자동차와 흡연을 위험 1,2위로 인식했고 원자력은 20번째라고 답했다. 막연한 공포와 실제와는 적지 않은 괴리가 있다는 얘기다.

방사능 누출을 철저히 점검하고 대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진짜 위험을 가려내는 것은 더 중요하다. 그래야 대비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