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진면목을 제대로 이해하는 한국의 비즈니스맨들이 얼마나 될까. 프랑스는 예술과 문화,명품의 나라이지만 근본은 농업 국가이면서도 원자력과 같은 에너지산업을 비롯해 항공,철도,자동차,화학,의약분야 등에서 세계적인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 정부의 효과적인 출산장려책에 힘입어 출산율이 유럽연합(EU) 국가 중 최고 수준인 2.1명으로 연간 80만명의 신생아가 태어나고 있다. 여전히 주 35시간 근무에 매년 5주간의 바캉스를 즐기고 있지만 생산성은 세계 1위다. 대부분의 비즈니스맨들은 영어 구사에 어려움이 없다.

수입상품 경쟁력의 관건은 가격 쪽이 더 우세하다. 프랑스는 세계 최대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며,경기가 침체해도 월수입이 일정한 공공부문 근로자의 비율이 유럽에서 가장 높다. 노령연금으로 구매력을 유지하는 인구가 많기 때문에 지난번 금융위기 때도 내수시장의 견인력으로 EU국가들 중에 타격을 가장 적게 입었다.

그런데 대부분 한국인은 프랑스를 단지 문화 예술,패션의 나라로만 생각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바캉스와 파업을 일삼아 생산성이 낮고,심지어 프랑스 사람들은 개인 생활을 즐기기 위해 출산을 하지 않아 인구가 줄고 있고,자존심 때문에 영어를 알아도 안 쓰는 줄로 잘못 알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다른 모든 외국 중 한국에 대한 인식은 지난 10여년간 가장 크게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다. 국가 이미지가 전반적으로 향상된 것은 물론이고,경제교역 파트너로서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대단히 높아졌다. 프랑스의 주요 산업들을 보면 한국과 경쟁관계에 있기도 하지만,그렇기 때문에 더 협력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부문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프랑스 기업들이 과거 중국에서 해법을 찾으려고 하다가 실망하고 한국 쪽으로 눈을 돌리는 사례가 부품산업을 중심으로 더 늘어나고 있다. 자동차부품과 전기전자분야,항공,화학 쪽에서 그런 협력수요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최근 체결된 한 · EU 자유무역협정은 이런 협력관계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가속화될 한국 기업과 프랑스 업체 간 협력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쪽에서 결과를 지나치게 빨리 보려고 한다는 점인 것 같다. 프랑스인들은 비즈니스에서도 좀체로 서두르는 법이 없다. 프랑스 사람들과의 거래에서는 인내를 갖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노트르담 성당을 건축하는 데 300년이 걸렸고,지금도 웬만한 건물 한 채 짓는 데 4~5년은 기본으로 걸린다. 최근 들어서는 시대가 변한 만큼 프랑스도 여러 면에서 빨라진 셈인데도 속도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느리기만 하다. 이사 가서 전화와 인터넷이 개통되는 데 10년 전 한 달 걸리던 것이 이젠 2주로 단축됐으니까.

느린 문화는 상거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북미나 동남아 시장에 익숙한 우리 업체들이 이런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초기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우리의 이런 '속도 문화'가 프랑스에서도 점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다. 다만 초기 관계에서는 인내를 갖고 추진을 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은 프랑스 기업들에 과거와 같이 일본의 품질과 중국의 가격 사이에 낀 샌드위치가 아니라,품질도 따라잡고 적기 딜리버리도 보장해 주는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중이다.

박재규 KOTRA 파리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