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까지 선정 작업을 마친 뒤 이달 중 발표키로 했던 원자력발전소 신규 지정 작업이 중단됐다. 일본의 대재앙이 사업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5일 "일본 원전 사고로 국내에서도 원전 건설에 대한 반대 여론이 커져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며 "오는 6월 말까지는 선정을 완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돌발 변수에 국책사업이 흔들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사전에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으면 막을 수 있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도 공청회 한번 제대로 열지 않아 지자체들의 반발을 키웠다. 국책사업 추진 체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사전 타당성 평가 미흡

신규 원전 부지 선정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책사업은 비슷한 절차로 진행된다. 사업 주체인 국가기관이 공정성과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민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평가위원회를 만들어 선정을 의뢰하는 식이다.

발주 부처는 평가위의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일반적이다. 신규 원전 부지 선정 역시 작년 12월 전문가 10여명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에서 논의돼 왔다.

문제는 반대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나 환경영향 평가 등 사업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절차가 부지 후보지를 선정한 이후에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평가위원회가 경제성 환경성 등에 대한 종합점수를 매겨 결정을 내린 뒤 진행되는 검증 또는 평가 작업은 '형식적인 절차'로 불신을 받고 있다.

새만금 사업은 사업 골격이 확정된 이후 제기된 환경오염 소송 등으로 여러 차례 공사가 중단됐다. 1992년 착공됐던 경부고속철도 역시 환경단체의 반발로 천성산 터널공사가 지연되기도 했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선정 이후 열리는 공청회는 이미 결정된 것을 설명하는 형식적 절차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며 "선정 이전에 타당성 평가를 심층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부처 간 이견 조율도 문제

정부 부처 간 이견도 문제다. 전남도의 서남해안관광레저기업도시 개발계획(J프로젝트)은 사업지구 중 송천 · 초송지구의 사업 추진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간척지인 이들 지구의 토지 소유자인 농어촌공사가 최근 영농조합 등 농민들에게 장기 임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또 농림수산식품부가 부동지구를 J프로젝트에 편입시키는 게 타당한지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하면서 문화체육관광부 전남도 등과 갈등을 빚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문화부가 2009년 국토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해 '타당성이 있다'는 결과를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부동지구가 협의 없이 J프로젝트에 편입됐기 때문에 객관적 타당성을 검증받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론에 휘둘려서도 곤란

국책사업의 대표적인 성공 모델은 경부고속도로 건설 사업이다. 경제 규모나 재원 조달 능력 등 여러 면에서 무리하게 여겨졌지만 과감한 추진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이후 국책사업에서 정부의 강력한 추진력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환경 문제나 여론 등에 따라 국책사업이 중단되거나 흐지부지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인 비전으로 국책사업을 결정한 뒤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 국가적 손실을 줄이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사전 타당성 검토는 철저히 하되 일단 결정되면 밀어붙이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