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팔 비튼 정부, 유류세는 안 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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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세금도 함께 내려야 체감효과 극대화"
지경부, 세제당국에 떠넘기기…재정부 "불가"
지경부, 세제당국에 떠넘기기…재정부 "불가"
SK에너지와 GS칼텍스,에쓰오일이 기름값을 인하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시선은 이제 정부로 향하고 있다. '업계 팔 비틀기'에 성공했으니 정부도 유류세 인하로 성의를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딴청이다. 업계의 기름값 인하를 압박해온 지식경제부는 "우리 할 일은 다했다"며 뒤로 빠지는 눈치다. 남은 숙제인 유류세 인하는 세제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 소관이니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재정부는 유류세 인하로 관심이 이동하는 데 대해 무척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정유사의 한 관계자는 "기름값의 절반은 세금인데 우리만 허리띠를 졸라매고 정부는 가만히 있는다면 이것이야말로 불공정한 행위"라며 "정부도 유류세 인하를 통해 기름값 인하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했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로 화답할까.
◆기름값 절반이 세금
휘발유에 붙는 유류세(교통세 주행세)는 ℓ당 정해진 금액이 붙는다. 기름값이 오른다고 세금이 많아지진 않는다. 휘발유 소비자가격이 1월 초 ℓ당 1800원 선에서 3월 마지막 주 기준 1967원10전(전국 평균가격)으로 올랐지만 유류세는 745원90전이다. 여기에다 10%의 부가세를 포함하면 세금은 ℓ당 924원70전이다.
판매가격에 연동되는 부가세 비중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기름값이 오를수록 전체 소비자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낮아진다. 3월 마지막 주에는 47%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정유사들이 공급가격을 ℓ당 100원씩 낮추기로 함에 따라 세금 비중은 49.5%로 높아졌다. 정유사 공급가격은 932원에서 832원으로 떨어져 소비자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4.6%로 낮아졌다. 기름값에서 세금 비중이 가장 높아진 것이다. 그만큼 유류세를 낮추라는 압박도 거세질 수밖에 없다.
◆지경부 "공은 재정부로 넘어갔다"
지경부는 느긋하다. 사정이야 어떻든 기름값 인하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는 데 만족스러워하는 기색이다. 정유사 원가구조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정유사들이 앞장서 공급가격을 낮췄으니 지경부로서도 체면은 세우게 됐다.
지경부는 지난 석 달간 석유가격 태스크포스(TF)를 이끌며 마련한 기름값 종합대책을 6일 발표할 예정이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정유사들이 '눈치껏' 기름값을 낮췄으니 한시름 던 셈이다. 일각에선 원가구조 조사 결과 신통한 내용이 없자 사전에 정유사들을 압박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경부는 이제 화살을 딴 곳으로 돌리고 있다. 타깃은 재정부다. 지경부 관계자는 "이 정도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다 한 것 아니냐"고 했다. 지경부로선 할 만큼 했으니 이제 재정부가 나설 차례라는 의미다. 그는 "유가가 지금 추세로 계속 오른다면 재정부도 두어 달 내 유류세를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버티는 재정부
주위 압박에도 재정부의 고집에는 변화가 없다. 재정부 관계자는 "세금은 정부가 마음대로 쓰는 돈이 아니며 세수가 펑크 나면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며 "유류세 인하는 국제유가가 2008년 수준인 배럴당 130달러 이상으로 급격하게 치솟지 않는 한 내놓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해 유류세로 걷히는 세금은 20조원가량으로 연간 총 세수(178조원)의 11.2%에 달한다. 유류세를 10% 깎으면 2조원의 세수가 날아간다.
일각에선 정부가 유류세 인하에 앞서 원유에 매기는 관세를 인하하는 카드를 먼저 내놓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현재 3%인 관세를 1%포인트 낮출 경우 기름값은 ℓ당 7원60전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정종태/박신영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