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성의표시' 압박에 SK에너지가 기름값을 3개월간 ℓ당 100원 내리기로 했다. 이유야 어떻든 정부가 가격결정에 개입한 것은 분명 옳지 않은 일이다. 정부 압력에 백기를 든 정유사들도 기업으로서는 정당하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기왕에 사정이 이렇게 돌아갔다면 이번에는 정부도 성의표시를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기름값의 47%를 차지하는 유류세를 손대지 않고선 기름값을 낮출 수 없다.

유류세의 근간인 교통세는 탄력세율이 적용되는 만큼 정부 결정에 따라 당장 내릴 수도 있다. 탄력세율이란 법 개정 없이 세율을 ±30% 범위 내에서 조정할 수 있도록 정부에 재량권을 준 것이다. 정부는 2008년 3월 휘발유와 경유의 유류세를 10% 인하해 그해 말까지 적용했었다. 당연히 부가가치세도 함께 줄어 결과적으로 휘발유 90원,경유 60원 이상의 가격인하 효과를 냈다. 게다가 당시 휘발유값은 ℓ당 1687원으로 지금보다 300원 가까이 낮았다. 지금은 ℓ당 475원인 교통세 기본세율에 11.4% 할증된 529원을 물리고 있고,교통세에 연동되는 교육세 주행세와 부가세까지 할증돼 지난주 가격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휘발유 1ℓ에 붙는 총 유류세가 924.7원에 이른다.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는 유류세를 내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유류세를 내려봐야 국제유가가 뛸 때는 소비자들이 인하효과를 체감하기 어렵고 세금만 축낸다는 논리다. 나중에 세율을 인상할 때 조세 저항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유류 세수는 줄잡아 20조원으로 전체 세수의 11%에 달한다. 정부는 2009년 이래 유류세가 고정돼 있다고 주장하지만 국제유가가 오를수록 관세와 부가세도 덩달아 늘어나는 구조다. 소비자시민모임에 따르면 26주 연속 기름값이 오르는 동안 세금도 ℓ당 32원이나 올랐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정부도 세금을 더 걷고 있는 셈이다.

유류세 담뱃세 같은 간접세는 정부가 가장 손쉽게 거둘 수 있는 세금이다. 나랏빚이 400조원에 달해 한푼의 세수가 아쉬운 재정부 당국자들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정유사들에 성의를 보이라고 압력을 넣을 정도라면 정부도 응분의 성의를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