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경제부가 일부 비수도권 국회의원들의 압력에 못이겨 오는 11일 관보 게재와 함께 곧바로 시행될 예정이었던 첨단업종의 수도권 입지규제 완화를 유보하기로 한 것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다. 단순한 행정절차에 불과한 관보게재 일정까지 정부가 행정조치의 도구로 남용하는 선례를 남긴 것은 정책의 예측가능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행위나 다름없다. 그동안 입지규제가 곧 시행될 것으로 믿고 준비해왔던 기업들만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당초 첨단업종의 집적 효과를 위해 연관산업의 해당 품목을 수도권 공장입지 규제 대상에서 풀어주는 내용을 담은 산업집적 활성화 및 공장 설립에 관한 법률(산집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입법예고됐고, 관보 게재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지경부가 지역 출신 국회의원과 지방여론 수렴을 핑계댄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투자 촉진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추진됐던 기업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주무부처가 스스로 부정하는 것밖에 안된다.

비수도권 여야 국회의원들이 해묵은 균형발전 논리를 내세워 산집법 개정안을 즉각 철회하라고 나선 것도 억지에 가깝다. 그동안 가만 있다가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로 지역 여론이 악화되자 산집법 개정안에다 화풀이를 해대는 것으로밖에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것도 국회 내 기획재정위원장, 국회부의장 등 여야 중진의원들이 앞장서서 이러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집적효과, 고급인력 확보 등 첨단업종의 특성을 조금이라도 고려한다면 입지 규제완화는 불가피하다. 수도권이냐 지방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일단 기업들이 원하는 곳에 투자할 수 있게 숨통부터 터주고 볼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첨단업종이 택할 길은 해외밖에 없다. 국내에서 균형이 어떻고 수도권과 지방이 어떻고 싸우다가 첨단기업들이 고사하거나 해외로 나가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정치권을 설득시켜야 할 정부가 되레 정치권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아무리 선거를 앞두고 있다고 해도 정부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