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이 뭔지 보여주겠다"…65세 연출가의 반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투란도' 지휘봉 잡은 김효경 단장
"대사와 워킹이 뭉개지잖아,너 들어가고 넌 지금 나가! 숨을 쉴 땐 숨을 쉬란 말이야.넌 예쁜 척하지 말고,괴물이 되라니까. 관객이 소름끼칠 정도로 사나워지라고.너 애교 부리면 징그러워.내일 연습 때도 이러면 다 죽일 거야."
서울 광화문에 있는 서울시뮤지컬단 연습실.29일부터 세종M시어터에서 공연할 뮤지컬 '투란도'의 리허설 현장은 김효경 단장(65 · 사진)의 호통으로 두 시간 넘게 쩌렁쩌렁 울렸다. 그는 안무,발성,호흡,표정,시선처리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 쉴새없이 '독설'을 퍼부었다. 10분 휴식 시간에 배우들에게 이렇게 험한 분위기에서 어떻게 연습하느냐고 물었더니,약속이나 한듯 웃으며 답했다. "단장님한테 욕 안 먹고 집에 가는 날은 마음이 허전해요. 그날은 뭔가 정말 잘못한 것 같거든요. "
지난해 10월 부임한 김 단장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맹활약한 명연출가다. 1975년 연극 '햄릿' 연출로 데뷔한 그는 뮤지컬 '애니'(1985년),무용 '맹가나무 이야기'(1987년),오페라 '휘가로의 결혼'(1988년),창극 '심청전'(1994년) 등 많은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1990년대 이후엔 국내외 공식 행사나 축제의 총연출로 이름을 알렸다.
창작뮤지컬 '투란도'는 부임 후 첫 작품.1998년 서울예술단의 뮤지컬 '바리' 이후 13년 만이다.
"환갑 넘어 학교 그만두고 여기 온다고 많이들 뜯어 말렸어요. 특히 집사람한테 혼났죠.그래도 해야 했어요. 요즘은 '공연' 보러 갔다 '고문' 당하고 오는 경우가 더 많다니까요. 스타 마케팅으로 관객을 속이는 졸속 작품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뭔가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 결심했습니다. "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뮤지컬 버전인 투란도(投蘭圖)는 '그림이 된 외로운 난초'라는 뜻.오페라의 줄거리가 큰 축이지만 색다른 해석이 더해졌다. 푸치니 작품에서 공주 투란도트는 남자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오르지만 그 이유가 잘 드러나지 않아 감정이입이 안 된다는 게 김 단장의 해석.그는 공주가 왜 남자들에게 적개심을 품게 되는지를 새로 설정하고 정치적 야망을 품은 인물을 추가했다. 무대는 네 개의 담장 세트가 전부다. 장면마다 이 세트가 낱개로 흩어졌다 모였다 하며 변화한다.
"제작비는 최악의 상황이에요. 7억원에서 대관료와 인건비 빼고 3억5000만원으로 만드는 거죠.이걸로도 얼마나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려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
배우 명단에 스타는 한 명도 없다. 대부분 서울시뮤지컬단 단원이고 주연 등은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다. 실력으로 정면승부하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요즘 10년차 뮤지컬 배우들이 갈 데가 없어요. 주연으로 오디션 보면 거긴 TV에서나 보던 대중가수나 아이돌 스타들이 자릴 꿰차고 있고,까마득한 후배들하고 같은 출연료를 받고 앙상블로 서자니 자존심 상하죠.10년 뒤면 한 · 중 · 일 문화전쟁이 일어날텐데 이런 식으로 가다간 한국은 암울해요. 배우도 스태프도 실력 있는 사람을 자꾸 발굴하고 키워야죠."
그가 뮤지컬단에 와서 처음으로 한 일은 단원들과의 '극기 훈련'.공연이 있든 없든 오전엔 무조건 나와 함께 연습했고,그래도 부족한 사람은 따로 남아 '나머지 공부'를 했다.
"발레단도 매일 클래스가 있고,축구 선수도 경기 없다고 쉬는 법이 없죠.목소리도 악기인데,공연 때 한두 달 연습한다고 목이 트일 리 없어요. 처음엔 불만도 많았지만 지금은 다들 좋아해요. 말은 좀 거칠게 하지만 이젠 제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요. "그는 이런 열정을 10년 이상 어디에 쏟아부었던 걸까. 한창 활동하던 1996년 열일곱살이던 아들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대학 강단에만 서 왔다고 했다. 이제 그 한을 공연으로 풀어낼 때가 온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서울 광화문에 있는 서울시뮤지컬단 연습실.29일부터 세종M시어터에서 공연할 뮤지컬 '투란도'의 리허설 현장은 김효경 단장(65 · 사진)의 호통으로 두 시간 넘게 쩌렁쩌렁 울렸다. 그는 안무,발성,호흡,표정,시선처리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 쉴새없이 '독설'을 퍼부었다. 10분 휴식 시간에 배우들에게 이렇게 험한 분위기에서 어떻게 연습하느냐고 물었더니,약속이나 한듯 웃으며 답했다. "단장님한테 욕 안 먹고 집에 가는 날은 마음이 허전해요. 그날은 뭔가 정말 잘못한 것 같거든요. "
지난해 10월 부임한 김 단장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맹활약한 명연출가다. 1975년 연극 '햄릿' 연출로 데뷔한 그는 뮤지컬 '애니'(1985년),무용 '맹가나무 이야기'(1987년),오페라 '휘가로의 결혼'(1988년),창극 '심청전'(1994년) 등 많은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1990년대 이후엔 국내외 공식 행사나 축제의 총연출로 이름을 알렸다.
창작뮤지컬 '투란도'는 부임 후 첫 작품.1998년 서울예술단의 뮤지컬 '바리' 이후 13년 만이다.
"환갑 넘어 학교 그만두고 여기 온다고 많이들 뜯어 말렸어요. 특히 집사람한테 혼났죠.그래도 해야 했어요. 요즘은 '공연' 보러 갔다 '고문' 당하고 오는 경우가 더 많다니까요. 스타 마케팅으로 관객을 속이는 졸속 작품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뭔가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 결심했습니다. "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뮤지컬 버전인 투란도(投蘭圖)는 '그림이 된 외로운 난초'라는 뜻.오페라의 줄거리가 큰 축이지만 색다른 해석이 더해졌다. 푸치니 작품에서 공주 투란도트는 남자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오르지만 그 이유가 잘 드러나지 않아 감정이입이 안 된다는 게 김 단장의 해석.그는 공주가 왜 남자들에게 적개심을 품게 되는지를 새로 설정하고 정치적 야망을 품은 인물을 추가했다. 무대는 네 개의 담장 세트가 전부다. 장면마다 이 세트가 낱개로 흩어졌다 모였다 하며 변화한다.
"제작비는 최악의 상황이에요. 7억원에서 대관료와 인건비 빼고 3억5000만원으로 만드는 거죠.이걸로도 얼마나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려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
배우 명단에 스타는 한 명도 없다. 대부분 서울시뮤지컬단 단원이고 주연 등은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다. 실력으로 정면승부하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요즘 10년차 뮤지컬 배우들이 갈 데가 없어요. 주연으로 오디션 보면 거긴 TV에서나 보던 대중가수나 아이돌 스타들이 자릴 꿰차고 있고,까마득한 후배들하고 같은 출연료를 받고 앙상블로 서자니 자존심 상하죠.10년 뒤면 한 · 중 · 일 문화전쟁이 일어날텐데 이런 식으로 가다간 한국은 암울해요. 배우도 스태프도 실력 있는 사람을 자꾸 발굴하고 키워야죠."
그가 뮤지컬단에 와서 처음으로 한 일은 단원들과의 '극기 훈련'.공연이 있든 없든 오전엔 무조건 나와 함께 연습했고,그래도 부족한 사람은 따로 남아 '나머지 공부'를 했다.
"발레단도 매일 클래스가 있고,축구 선수도 경기 없다고 쉬는 법이 없죠.목소리도 악기인데,공연 때 한두 달 연습한다고 목이 트일 리 없어요. 처음엔 불만도 많았지만 지금은 다들 좋아해요. 말은 좀 거칠게 하지만 이젠 제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요. "그는 이런 열정을 10년 이상 어디에 쏟아부었던 걸까. 한창 활동하던 1996년 열일곱살이던 아들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대학 강단에만 서 왔다고 했다. 이제 그 한을 공연으로 풀어낼 때가 온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