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용카드의 역사는 짧지 않다. 1978년 외환은행이 해외여행객에게 비자카드를 발급하기 시작한 뒤 80년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82년엔 마스터카드가 도입됐다. 은행계 카드론 80년 국민카드에 이어 82년 조흥은행 등 5개 은행이 공동 출자해 만든 BC카드가 생겼다.

신용카드 사용자가 급증한 건 1997년 외환위기 이후.내수 진작과 세원 확보를 위해 정부에서 사용을 장려하면서부터다. 외상이면 소도 잡는다는 판에 신용도에 상관없이 길거리에서도 만들어주니 98년 30조원 선이던 신용카드 사용액은 2000년 79조5000억원으로 폭증했다.

물건만 사는 게 아니라 아쉬울 때마다 현금을 뽑아쓰는 일이 가능하자 몇 개의 카드로 이쪽에서 뽑아 저쪽 걸 막는 돌려막기가 성행했다. 연체율은 28%까지 치솟고 급기야 2003년 카드대란이 터졌다. 발행된 카드 숫자는 자그마치 1억400만장,사용액은 517조3000억원이었다.

지난해 12월까지 발급된 신용카드는 1억1658만장.가맹점은 160만여곳.이용실적은 517조4000억원이다. 2003년 카드 대란 때와 비슷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신용카드를 신청하면 으레 비자나 마스터 같은 해외 겸용카드를 발행하기 일쑤다.

해외사용액은 1.2%에 불과하고 87%가 해외사용 실적이 없다는데도 불구,계속 발급된다. 겸용카드의 69%를 차지한다는 비자카드의 연회비는 5000~1만원.2000~5000원인 국내 카드의 2배다.

비자카드의 경우 또 해외에서 결제하면 사용액의 1.0%를 소비자가 부담하고,국내 결제 때 역시 0.04%를 떼간다. 국내 이용 수수료는 카드사가 부담한다지만 결국은 소비자 몫일 수밖에 없다. 국내 카드사가 2007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낸 로열티만 3781억원에 이른다는 정도다.

소비자의 선택이었다는 건데 납득하기 어렵다. 제대로 설명했다면 비싼 연회비에 수수료까지 물어야 하는 외국계 카드를 죄다 택했을리 만무하다. 실제 그덕에 은행의 담당 직원들은 비자카드 부담으로 해외여행을 즐겼다고도 한다.

더이상은 안되겠다 싶었을까. 비씨카드가 연회비 2000원만 내면 별도 수수료 없이 국내외에서 모두 사용 가능한 '비씨 글로벌카드'를 내놨다는 소식이다. 30년 넘게 엄청난 수수료를 부담해왔다는 건 어이없거니와 이제라도 덜 물게 됐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경쟁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