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접경국 사우디, 미국 못지 않은 영향력 보유
살레 정권 붕괴 충격파 최소화 방안에 역점

33년째 장기 집권 중인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이 강력한 우방인 미국으로부터까지 버림받을 처지에 놓이게 되면서 퇴진 시기가 더욱 앞당겨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살레 대통령을 알-카에다의 세력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대 테러리즘 정책의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해 왔지만, 최근 예멘 시위사태로 사상자가 계속 늘어나자 살레 정권을 더 이상 두둔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살레 정권의 붕괴는 대 테러 정책에 실질적인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며 살레의 조기 퇴진을 부정적으로 바라봤지만 최근에는 권력을 이양토록 살레를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도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 미국의 입장이 살레 퇴진 쪽으로 선회했다고 지난 3일 보도했다.

예멘 내 유력 부족과 종교 지도자는 물론 장관들과 외국 주재 대사, 군 내부 실력자에 이르기까지 사회 각계각층으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아 왔던 살레 대통령으로서는 마지막 버팀목이나 다름 없던 미국의 암묵적 지지마저 잃게 되면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미국마저 살레 대통령에게 등을 돌림에 따라 이제 관심은 예멘에서 미국 못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사우디 아라비아의 대응 방식에 집중되고 있다.

예멘의 접경국인 사우디는 예멘의 정정 불안과 알-카에다의 세력이 자국에까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막대한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살레 정권을 지원해 왔다.

사우디는 때로는 병력을 동원한 실력 행사를 통해 살레 정권을 돕기도 했다.

2009년 11월에는 예멘 시아파 알-후티 반군이 예멘 정부군과 내전 중 자국 영토를 침범했다는 이유로 맹공을 퍼부어 결국 2010년 2월 예멘 정부와 반군이 휴전에 합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뉴아메리카재단의 중동 전문가 바라크 바르피는 로이터통신을 통해 "예멘에서 사우디는 미국보다도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며 "사우디는 살레 정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우디 역시 살레 대통령이 2013년까지 임기를 모두 채우기는 어렵다고 보고 살레 정권 붕괴 시 자국에 미칠 충격파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사우디 외교관들은 사우디 정부가 살레 대통령의 후임자로 지난달 21일 시위대 지지를 선언한 알리 모흐센 알-아흐마르 소장을 선호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남북 예멘 내전부터 최근까지 수십년간 예멘 군 내부에서 강력한 지도력을 보여온 모흐센이 권력을 이양받을 경우 대 테러리즘 정책의 연속성이 유지되며 알-카에다의 발호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흐센 본인이 권력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고 밝히고 있는데다 살레 대통령의 오랜 동지로 지내온 전력 때문에 예멘 국민의 반발 기류가 상존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사우디가 그의 집권을 강하게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예멘 전문가 알리 세이프 하산은 "사우디는 이제 살레를 좋아하지 않지만 또한 혁명이 가져올 변화 또한 원치 않기 때문에 모흐센은 선택 가능한 경우의 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멘 시위사태의 안정적인 해결을 위한 사우디의 적극적인 개입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사우디를 포함한 아라비아반도 6개국으로 구성된 걸프협력협의회(GCC)는 지난 4일 예멘 사태 해결을 위한 중재를 자청했다.

예멘 정부와 야권은 모두 GCC의 중재 노력을 수용키로 하고,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열릴 협상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두바이연합뉴스) 강종구 특파원 iny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