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사인 규제 철폐, 유류세 인하는 '검토 과제'
전자상거래 사이트, 선물거래소는 과거에도 추진됐다 무산
실효성에 의문 제기돼

6일 정부가 마련한 석유가격 안정화 대책의 골자는 석유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고 투명성을 높여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날 지식경제부와 기획재정부 등이 내놓은 대책은 정유사폴 주유소의 혼합판매 허용, 석유제품 거래시장 개설, 자가폴 공동구매, 제6의 독립폴 신설, 석유수입업 활성화 등 기름값을 잡기 위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망라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 이후 3개월간 공무원과 석유 전문가 등이 역량을 집중해 연구한 결과라고 보기에는 과거 수차례 시도됐다 흐지부지 사라진 정책이거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내용이 많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선 지경부는 정유사폴 주유소가 다른 정유사 제품을 제한 없이 섞어 판매할 수 있도록 정유사 폴사인과 판매제품 일치 의무를 완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현재 정유사폴 주유소가 다른 회사 기름을 팔려면 구별이 되도록 별도의 저장탱크와 주유기를 설치해야 하는데, 이런 제약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는 정유사-대리점-주유소의 수직계열화된 유통 구조를 깨고 정유사 간 경쟁을 부채질해 기름값 인하로 연결해보겠다는 복안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이를 위해 관련 법을 개정하는 것보다는 별도의 특별법을 마련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현 석유제품 유통구조의 근간을 뒤흔드는 내용이어서 정유업계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돼 실제 장기과제로 차질없이 추진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이런 부담 때문인지 지경부는 앞으로 의견수렴과 법률검토 등 연구할 것이 많다며 '추가 검토과제'라는 단서를 붙였다.

이와 함께 기재부는 고유가 시대에 대비해 유가인상 대응계획(contingency plan)을 세워 향후 유가 추이를 고려해 유류세를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이 방안 역시 장기 과제로 연구해보겠다는 수준으로, 유가 수준에 따라 세금을 어느 정도 인하할지 등의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없어 이 역시 제대로 이행될 수 있을지 의문시하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그동안 기름값 대책을 논할 때 유류세 인하 문제를 완전히 배제해 온 태도에서 한발 물러선 것으로 읽힌다는 점에서는 유의미하다.

SK 등 최근 정유사들이 3개월 시한으로 기름값을 ℓ당 100원씩 내렸는데, 하반기 들어 할인이 끝나고 고유가가 지속돼 국민의 체감 기름값이 치솟게 되면 정부가 유류세 인하 카드를 꺼낼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또 정부는 국내 석유제품 거래시장을 만들겠다는 복안을 내놓았다.

정부는 올 11월 말까지 한국거래소에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개설하고 이를 토대로 2012년 말까지는 석유제품 선물시장을 개설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시장에서 통용되는 석유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정유사 공급가격이 국내 수급상황과 무관하게 국제시장 추이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를 깨려는 의도가 있다고 지경부는 설명했다.

그러나 전자상거래 사이트는 2000년, 석유 선물시장은 2008년 추진됐다가 무산된 바 있다.

지경부는 당시 석유 거래시장 참여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어 업체의 참여가 활발하지 않아 실패했다고 설명하고 유인책으로 법인세와 소득세 감면정책을 내놓았지만 공급자가 제한된 현 상황에서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많다.

유연백 석유산업과장은 "현재 싱가포르 석유시장에서도 전체 거래의 5% 이하만 거래되고 있지만 차질없이 운영되고 있다.

석유거래시장은 석유의 기준 가격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가격 안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지경부는 자가폴 주유소 협의회(가칭)를 구성해 석유 공동구매를 하도록 지원하고 4대 정유사폴과 농협폴 외에 제6의 독립폴을 신설시키는 한편 정유사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평가해 공개하거나 LPG 등 석유제품 가격공개제도를 확대하는 등의 대책도 내놓았지만 파급력은 제한적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는 한국석유공사가 도매업 등 유통시장에 진출하는 방안도 밝혔지만, 공기업이 시장에 직접 개입해 민간과 경쟁하는 것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고 석유공사가 적자를 내면 고스란히 재정부담으로 돌아오는 문제 등으로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정책 제시는 아니지만, 이번 대책발표에서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가 1.5%로 획일화된 주유소 카드 수수료의 불공정행위 여부를 들여다보겠다고 밝혀 주목된다.

주유소 카드 수수료가 달라지면 경쟁으로 수수료가 인하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bana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