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호쿠지역 대지진 참사는 2001년 미국의 9 · 11테러에 이어 21세기 가장 경악스러운 사건이라 할 만하다.

일본처럼 인프라가 잘 정비된 나라에서 3 · 11 대지진으로 희생된 사람이 2만7000명을 넘었으니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비극이다. 원전이 폭발하는 장면이 방송에 생중계되고,잇따라 나온 방사능 누출 경고는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땅이 파도를 탄 듯 흔들리고 주위의 모든 건물들이 곧 무너질 것처럼 무섭게 떨어대던 광경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공포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반면 극한상황을 감내해 내는 일본인들의 지극히 절제된 행동은 세계인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 잔의 식수를 받기 위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줄을 선 일본인의 모습,할당된 주먹밥을 부족한 사람들과 기꺼이 나누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눈물을 보이고 통곡하기보다는 고통을 속으로 삭이면서 묵묵히 이겨 내려는 지친 얼굴들에서 감동이 느껴졌다. 절제를 미학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문화 때문이기도 하고,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규율이 견고한 사회규범으로 자리잡은 덕이기도 할 것이다.

외국 언론은 이런 일본인의 모습을 두고 '인류의 진화'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극한 상황 속의 절제는 사태를 보도하는 일본 언론에서도 엿보였다. 침착함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런 놀라움은 줄곧 격앙된 논조를 휘둘러대는 한국 언론의 모습에 길들여진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이라고 했던가. 국민과 언론은 직접 비판을 삼갔지만,일본 정부의 초기 대응은 미숙하게만 보였다. 모든 업무처리를 규정집에 의한다는 일본 관료문화의 임계점이 드러난 게 아닌가 싶다.

피해 마을에 대한 초기 구호작업,대피소 생필품 지원 방식을 지켜 보던 외국인들조차 분통을 터뜨렸다. 만약 같은 사태가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이곳 한국인들은 '우리 정부라면 군대의 즉각적 공중 투입을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비단 문화 차이만은 아니지 싶다. 이는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초기 대응 미숙으로 원전 위기가 가중된 과정이나,자위대를 현장에 투입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관료주의의 비탄력성 등은 일본이라는 시스템에 내재된 위기의 축약판처럼 보였다. 게다가 방사능 오염수를 해양방류하고도 쉬쉬하다 한국엔 뒤늦게 알리는 등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 와중에 일본 정부는 한국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중학교 사회교과서 검정결과를 발표함으로써 '매뉴얼리즘'의 무신경증을 드러냈다. 대참사에 인도주의적 온정을 보였던 한국인의 정서가 차갑게 식고,'신의(信義)외교'를 고수하면서 교민철수 발표도 자제했던 주일 한국대사관의 노고도 헛수고로 만들어 버렸다.

불안이 일상화된 이곳에서 일본 국민의 정부 비판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권위에 대한 복종이 체질화한 탓일까. 하의상달의 민주주의 가치보다는 상의하달의 효율성이 지나치게 체화된 탓일까. 19세기 근대화에 성공했던 일본에서 과연 근대시민사회가 제대로 성숙됐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3 · 11 대참사를 통해 에너지 해결에 원자력이 과연 적절한 선택인지 생각해 보는 계기도 맞았다. 원전 선진국이라는 일본에서조차 이 정도의 안전 수준이었다면 앞으론 그동안의 '원전은 안전하다'는 말에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후 최대의 위기에 최약의 정부,세계 최대의 정부 부채를 안고 있는 일본.지진과 쓰나미,원전사고를 수습하는 길은 멀고도 험할 것이다. 이것을 메이지유신,2차 대전 이후의 재건과 더불어 제3의 거대한 변혁의 발판으로 삼게 될지 관심을 갖고 지켜 볼 일이다.

김기정 < 연세대 교수·정치학 / 게이오대 방문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