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100원 내렸지만…주유소 "우린 못 내려"
국내 정유사들이 기름값을 일제히 ℓ당 100원씩 내린 7일,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가는 13원92전 떨어지는 데 그쳤다. 정유사 직영주유소들과 달리 전체의 87%를 차지하는 자영주유소들이 공급가격 인하분을 곧바로 판매가에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전국의 주유소에선 가격 인하를 기대했던 고객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주유소들은 재고가 다 팔릴 때까지는 가격을 내릴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부가 정유사들의 팔을 비틀어 공급가를 내린 부작용이 첫날부터 불거졌다는 지적이다.

한국석유공사의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전국 보통휘발유 평균 가격은 전날에 비해 ℓ당 13원92전 내린 1957원으로 조사됐다. 작년 10월9일(1693원62전) 이후 179일 만에 45전 내린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하락이다.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ℓ당 100원씩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소비자들로선 턱없는 인하 폭이었다. 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3개사가 주유소 공급가격과 직영주유소의 판매가를 내렸지만 자영주유소들은 이를 곧바로 판매가에 반영하지 않았다.

지난 2월 말 기준 모두 6622개에 달하는 3개사의 주유소 가운데 직영주유소는 855개로 13%다. 직영주유소가 모두 판매가격을 인하한다고 해도 영향은 미미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다고 정유사가 추가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방법도 별로 없다. 자영주유소에 가격을 인하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얼마를 받도록 가격지도에 나서면 공정거래법에 걸린다"며 "가격인하에 동참해달라는 안내문을 발송하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고 말했다.

SK에너지가 공급가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신용카드 결제액 할인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기로 한 것도 휘발유 가격 인하 폭이 생각보다 작게 나오게 했다. SK에너지는 전체 시장의 35%에 해당하는 주유소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다.

주유소들의 가격 인하가 미미하다는 지적에 대해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정유사들이 100원 내리겠다고 약속했으니 주유소에서도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국 주유소들의 모임인 한국주유소협회는 주유소를 배제한 채 ℓ당 100원 인하가 결정됨에 따라 판매가격 인하가 당장은 힘들다고 주장했다.

협회 관계자는 "주유소 대부분이 이달 셋째주 판매분까지 재고가 있어 1~2주 정도 시차를 두고 판매가격이 인하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에선 공급가격 상승을 예상한 주유소들이 미리 사재기에 나섰다가 공급가격이 갑자기 큰 폭으로 떨어지자 집단 행동을 취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주유소를 찾은 소비자들의 시각은 엇갈렸다. 전날에 비해 ℓ당 112원을 내린 2007원에 휘발유를 판매한 에쓰오일 직영 평창동주유소의 엄승환 소장은 "많이 내렸다는 소비자도 있지만 더 인하해야 한다는 사람이 훨씬 많다"며 "이 기회에 세금을 확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조재희/주용석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