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풍수] 산골짜기 목 자리엔 집 짓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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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에 전원주택이나 별장을 지을 때 조심해야 할 터가 있다. 산골짜기의 목에 해당하는 땅이다. 이런 곳을 지리학에서는 선상지(扇狀地)라고 부른다. 물과 논밭이 있고 앞이 트여 경치가 아름다우며 교통도 편리한 경우가 많다. 집을 짓고 살기에 좋은 터로 보인다.
하지만 산이 끝나고,평야가 열리며,그 가운데를 냇물이 흐르는 곳이다. 홍수 때면 산에서 깎여 나온 흙 모래 자갈 등이 냇물을 따라 대량으로 흘러내리다 경사가 완만한 지역에 이르러 흐름이 약해지면서 부채꼴 모양으로 퇴적돼 만들어진 지형이다. 홍수나 산사태의 위험이 상존한다는 얘기다.
선상지는 바람이 거세 생기를 흩어지게 만든다. 바람은 골짜기를 따라 온도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낮에 해가 뜨면 산 정상은 따뜻하고 강과 들판은 차 바람은 아래에서 위로 곡풍(谷風)이 분다. 밤에는 반대로 산보다 아래 온도가 높아 산에서 들로 부는 산풍(山風)이 일어난다. 밤낮으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골짜기는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바늘 구멍에 황소 바람 들어온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찬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창호지 한 장으로 막은 창문에 작은 틈만 있어도 살을 에는 바람이 새어 든다. 바늘구멍만한 틈으로 새어 드는 바람이 그토록 시린 이유는 통로가 좁은 곳을 통과하는 공기는 넓은 곳을 지나는 공기보다 속도가 빨라서다. 일명 '베르누이 원리'에 의해 활짝 열린 창으로 드는 바람보다 구멍 바람이 더 세지고 매워진다.
계곡의 초입은 수구(水口)에 해당하므로 기가 빠르게 흐른다. 고무풍선에 바람을 넣어 부풀린 상태에서 꼭지를 놓으면 바람이 세게 빠져 나가며 사정없이 떨리는 꼭지 부분에 집을 짓고 사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
서울 시내에서 이런 골짜기의 목에 해당하는 장소가 공교롭게도 왕십리다. 왕십리는 도성 안에서 발생한 바람과 물이 좁은 수구(흥인지문)를 통해 빠져 나가며 강한 기세로 넓게 퍼지는 장소로 넓은 평야가 펼쳐졌다. 하지만 청계천은 흙심이 두텁지 못하다. 청룡 · 백호가 좌우를 감싸지도 못해 기가 세니 궁궐터로 주목받지 못했다. 조선 초기 무학대사가 한양에서 대궐 터를 찾고 있을 때다. 왕십리 부근을 둘러보는데 소를 탄 한 노인이 지나며 "이 소가 미련하기는 꼭 무학을 닮았구나. 바른 곳을 놔두고 엉뚱한 곳을 보다니"라며 채찍으로 소를 때렸다. 깜짝 놀란 대사가 예를 갖추고 도읍지를 물었더니 채찍으로 서북쪽을 가리키며 십리를 더 가라고 말했다. 그 말에 따라 경복궁 자리가 정해졌고 왕십리란 지명이 생겼다.
한양이 도읍지가 되려면 도성 안에서 생긴 바람과 물이 사람과 초목에 생기를 불어넣은 준 다음 원활하게 빠져야 했다. 만약 왕십리의 터가 좁고 막혀 있었다면 도성 안에는 생기가 원활하게 돌지 못했을 것이고,한양은 명당도 일국의 도읍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장
하지만 산이 끝나고,평야가 열리며,그 가운데를 냇물이 흐르는 곳이다. 홍수 때면 산에서 깎여 나온 흙 모래 자갈 등이 냇물을 따라 대량으로 흘러내리다 경사가 완만한 지역에 이르러 흐름이 약해지면서 부채꼴 모양으로 퇴적돼 만들어진 지형이다. 홍수나 산사태의 위험이 상존한다는 얘기다.
선상지는 바람이 거세 생기를 흩어지게 만든다. 바람은 골짜기를 따라 온도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낮에 해가 뜨면 산 정상은 따뜻하고 강과 들판은 차 바람은 아래에서 위로 곡풍(谷風)이 분다. 밤에는 반대로 산보다 아래 온도가 높아 산에서 들로 부는 산풍(山風)이 일어난다. 밤낮으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골짜기는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바늘 구멍에 황소 바람 들어온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찬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창호지 한 장으로 막은 창문에 작은 틈만 있어도 살을 에는 바람이 새어 든다. 바늘구멍만한 틈으로 새어 드는 바람이 그토록 시린 이유는 통로가 좁은 곳을 통과하는 공기는 넓은 곳을 지나는 공기보다 속도가 빨라서다. 일명 '베르누이 원리'에 의해 활짝 열린 창으로 드는 바람보다 구멍 바람이 더 세지고 매워진다.
계곡의 초입은 수구(水口)에 해당하므로 기가 빠르게 흐른다. 고무풍선에 바람을 넣어 부풀린 상태에서 꼭지를 놓으면 바람이 세게 빠져 나가며 사정없이 떨리는 꼭지 부분에 집을 짓고 사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
서울 시내에서 이런 골짜기의 목에 해당하는 장소가 공교롭게도 왕십리다. 왕십리는 도성 안에서 발생한 바람과 물이 좁은 수구(흥인지문)를 통해 빠져 나가며 강한 기세로 넓게 퍼지는 장소로 넓은 평야가 펼쳐졌다. 하지만 청계천은 흙심이 두텁지 못하다. 청룡 · 백호가 좌우를 감싸지도 못해 기가 세니 궁궐터로 주목받지 못했다. 조선 초기 무학대사가 한양에서 대궐 터를 찾고 있을 때다. 왕십리 부근을 둘러보는데 소를 탄 한 노인이 지나며 "이 소가 미련하기는 꼭 무학을 닮았구나. 바른 곳을 놔두고 엉뚱한 곳을 보다니"라며 채찍으로 소를 때렸다. 깜짝 놀란 대사가 예를 갖추고 도읍지를 물었더니 채찍으로 서북쪽을 가리키며 십리를 더 가라고 말했다. 그 말에 따라 경복궁 자리가 정해졌고 왕십리란 지명이 생겼다.
한양이 도읍지가 되려면 도성 안에서 생긴 바람과 물이 사람과 초목에 생기를 불어넣은 준 다음 원활하게 빠져야 했다. 만약 왕십리의 터가 좁고 막혀 있었다면 도성 안에는 생기가 원활하게 돌지 못했을 것이고,한양은 명당도 일국의 도읍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