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네) 8%,nein(아니오) 92%.'

유럽중앙은행(ECB)의 월례 통화정책회의가 열린 7일 아침.ECB가 위치한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호텔에서 TV를 켜자 방송사의 긴급 여론조사 결과가 화면에 떴다. "독일이 포르투갈을 도와줘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대다수가 반대 의견을 밝혔다. 전날 포르투갈이 유럽연합(EU)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는 소식에 역내 최대 부국인 독일 국민들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의 유럽'을 꿈꾸는 EU가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EU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국가 간의 대립과 반목으로 흔들리고 있다. 1년 사이에 그리스와 아일랜드에 이어 포르투갈까지 구제금융이라는 '링거'를 맞는 위기에 몰렸다. ECB가 23개월 만에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EU는 심각한 내부 갈등을 드러냈다. 독일을 대표로 하는 북유럽과 그리스 포르투갈 등 남유럽 사이의 경제 양극화를 방치할 경우 EU가 메이저와 마이너,두 리그로 쪼개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속도가 다른 두 자동차

ECB가 7일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선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 '열등생'과 관련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통상 30~40분이면 끝나던 회견은 1시간15분 동안 계속됐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일부 회원국들이 금리 인상으로 더 힘들어지지 않나?" "금리 인상이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면 남유럽 국가의 위기가 확대되지 않나?" 등 '까칠한' 질문이 이어졌다. 인플레 억제를 위해 일부 국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회견장을 지배했다.

장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는 "일부 국가가 아니라 유로존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등 원론적인 답변으로 공세를 피해가기에 급급했다. 트리셰 총재는 "3억3100만명의 유로존 국민 전체를 생각하자"는 말을 네 번이나 되풀이했다.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회원국 간 분열을 걱정했다. EU 싱크탱크인 유럽정책센터(EPC)의 한스 마텐 소장은 "지금 EU는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북유럽의 노르딕계와 개입주의를 지지하는 남유럽의 대륙주의자들로 양분된 상태"라며 "유럽 남북 간의 불균형이 가장 큰 골칫거리"라고 지적했다.

그는 "EU는 미국과 신흥국가 간의 양강구도에 끼지 못한 채 회원국끼리 도움을 주고받는 '이전연합(transfer union)'으로 전락했다"고 꼬집었다.

◆"차라리 유로화를 쪼개자"

인구 감소와 노령 인구 급증은 유로화의 경쟁력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EPC에 따르면 독일 인구는 2060년이면 현재보다 10% 줄어 주요 EU 국가 가운데 감소율이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EPC는 이 기간 독일의 15~64세 사이 노동인구가 30%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단일 통화가 오히려 경제의 자생력을 해친다는 지적도 있다. 회원국 간의 자유로운 경제 교류와 통합을 위해 도입한 유로존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경제가 약해지면 통화가치가 떨어지면서 수출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올라간다. 늘어난 수출로 소득과 고용이 늘어나면 경제가 힘을 회복하고 통화가치도 예전 수준으로 올라가면서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통상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유로존 국가들의 경제력은 제 각각인 반면 통화는 유로화라는 단일 통화로 묶여 있어 자율 조정 기능이 힘든 상황이다. ECB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브라이언 블랙스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는 "ECB 관계자들을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면 '차라리 두 종류의 유로화를 만드는 게 낫지 않으냐'는 농담 섞인 말을 종종 듣는다"고 전했다.

프랑크푸르트 · 브뤼셀=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